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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좋은 자리란

카페의 전망, 그리고 자리

"상급지"

부동산시장에서는 기회 있을 때 상급지로 가라고 한다.

처음 가장 좋은 자리에 집을 매수하지 못해도 점차 부동산 가치가 높은 곳으로 매도와 매수를 해가는 방식이다.

나야 뭐 내가 좋은 곳이 제일이니, 그 같은 말에 휩쓸리지는 않지만, 사람이 사는 곳에 상급지라는 표현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어쨌든 좁고 기회도 적은 한국 땅에서 부동산 가치가 좀 더 좋은 자리로 가라는 이야기니

그렇게 해서 경제적, 사회적 이득도 있을 줄로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리"는, 비단 부동산에서만 있는 게 아닌듯하다.

지하철에도 좋은 자리가 있고, 요새 카페에서도 "좋은 자리" 맡기는 중요하다.


언젠가 기분 좋게 놀러 간 제주에서 불쾌한 순간이 있었다.

지인이 알려준 전망 좋은 북동쪽 지역의 카페였다.

그곳은 통창에 푸르른 바다를 전망으로 좋은 것들이 담긴 장소였다.


이토록 공간이 충분한 대형카페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전망을 확보한 좌석들이 있기 마련이다. 제주에 머문적도 있어 딱히 최고의 전망이 보이는 자리를 원한 것은 아는데

마침 한 부부가 일어서고 있어  앉을 곳을 둘러보던 나는 그곳을 향했다.

그런데 비슷한 위치의 옆자리에서 후다닥 달려온 젊은 남자가 자리에 엉덩이를 내밀고 두 눈을 똥그랗게 올려다 보는 것이다.

그가 먼저 자리에 앉은 이후 내가 그 자리에 간 것이라면, 내 행동이 그에게 어긋나서, 의아하게 쳐다볼 수 있겠지만, 그 상황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내 엉덩이가 먼저 찜했어!?!
 다 큰 어른의 행동치고는 너무 이상했다. 그런 태도로 바다의 전망을 본다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제주에서 운 없게 만났던 그 행인의 기억이 강렬해서, 다음에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잘 피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카페에 들어가 곧 자리를 뜬 일행이 있자 그 자리를 게 됐다.

그런데 또 옆테이블에서 이 자리로 옮기려는 것인지 한 여자분이 쟁반을 들며 항의하듯이 나를 쳐다본다.

"왜 그러세요?" 여자분의 억울한 눈빛의 호소에 나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일까?

이전과 다른 상황이라면, 이번엔 내가 먼저 의자에 앉았다는 점이다.

나는 달려간 것도 아니고, 그분의 내심의 의사를 알 수도 없었다. 자리가 비어서 맡게 된 것인데 당신은  나를 억울하게 쳐다보냐는 것이니, 그렇다고 "저는 몰랐지만, 이 자리 앉으실래요? "할 수도 없다.

미처 내가 몰랐던 카페에서 전망 좋은 자리는, <옆 테이블에 우선권 원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어쩌면 자리 욕심 그만 내고 이럭저럭 비슷한 자린데, 어차피 앉아서 핸드폰 하실 거잖아요? 그냥 앉으세요! 하고 싶은 맘도 든다. 그 분의 쟁반이라도 먼저 있었더라면, 이런 기분나쁜 상황은 맞닥뜨리지 않아도 됐을 걸 싶다. (내가 질색하는 소지품으로 찜하는 여탕의 목욕탕 나쁜 문화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이 된 것은 민망하고, 안쓰런 맘이 든다. 그냥 비켜주고 싶었지만 그 조차 이상한 일인 것이다. 앞으로 이런 상황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카페에 가기 전 불쾌한 상황을 예측해야 한다.

 특히 전좋은 자리는 옆테이블!에게 우선권이 있을지도 모르니 (에효..) 이번에는 상대방이 더 이상 항의는 못했지만, 자리 욕심내는 사람들과 굳이 부딪히지 말자. 부딪히더라도 좀 더 부드럽게 대응하기로 하자. 나로선 아무래도 미리 옆 테이블이 옮겨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불쾌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새 지하철에도 자연스럽게 두 다리를 향하다가 앉는 게 아니라 뜀박질을 해서 자리에 앉는 2,30대 초반의 사람들을 보는데, 너무나 저돌적이다. 자리에 앉아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차례대로 걸어 들어와서 자리가 있으면 앉고 아니면 마는 것이다. 매너를 지키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이제는 가치 없는 일일까?  물론 특정 세대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그 나이 때는 그래도 젊고 배운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아, 가치란 게 달라졌나 보다' 싶을 정도다. 예전에는 이런 일들이 흔치는 않았던 것 같다. 어쩌다 상황이 그런거면, '먼저 하시죠'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예전에도 지하철에서 어쩌다 일부  그런 행동들이 거론되긴 했지만, 2,30대 젊은이들이 빈자리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그런 행동을 하는 일부 노인들은 기본적인 사회적 매너를 배운 지 오래이고, 그만큼 몸도 기운이 떨어져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기에, 나는 도대체 요새 이런 사람들을 보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친절한 사회,

그렇지 않더라도 웃고 마는 여유를 갖고 싶다.

어쩔 수 없다. 타인의 태도를 고칠 수는 없으니 내 기분은 내가 잘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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