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일기 같이 편하게 아무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편한데, 또 업으로 글쓰기를 하다 보면 생각만큼 진득하게 쓰지는 못하는 것 같다. 글쓰기에 알록달록한 능력을 유감없이 펼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보면 대충 일상의 파편을 슥.하고 끄적대는게 부끄럽기도 하다.그런가하면 언젠가 한 번은 직장의 팀 후배가 브런치를 몰래 읽고 있었다. 익명으로 쓰고 있던 일기장이라, 난처했다. 대체로 직장의 인연이어도 친밀한 사이인 경우 브런치 공간에 초대로 들어오는데, 그것도 아니고남의 글을 읽었더라면 좋아요를 하던지, 격려를 하던지, 아는 척을 해주면 좋을텐데.
만약 인터넷 공간이 개방된 공간이고, 아무나 다 봐도 좋다고 해도 개인의 식별성이 드러난 채 감시된다면우린 아마 무방비 상태로 머릿속에 마이크를 달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리고 브런치 글에 공들이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요새는 남의 글을 읽기보다 자기 글을 읽어달라는요구가 많아서 나까지 남들에게 그다지 가치 있는 글이 못 되는 일상을 하루가 멀다하고 만들어내는 일을 자제하게 된 것 같다. (어느 정도는 플랫폼, SNS, 유튜브가 쏘아 올린 풍토 때문이기도?)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사실 자주 못쓰는 것 같아서 변명을 엄청 늘어놓은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도 마찬가지지만, 좀 더 편하고 명랑하게 일상 저널을 써 내려가려고 한다.
@Choi e.k PD 작품. 안전벨트 꽉매라!, 우리의 20대는 이런 비탈길을 타고 내려가는 여정였다.
어릴 적 친구와 대학 친구가 다른 점, 그래서 각각이 더 좋은
약속을 할 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나름 기회비용을 포기하면서 사람을 만난다. 가끔은 미팅을 취소하거나, 가족을 뒤로하거나, 좀 더 경제적인 일들도 포기한다.
그런데 그때 아무렇지 않게 약속을 깨고 다른 선택지에 있는 상황에서 "미안해, 못 가게 됐어"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 (대체 누가 내게 그러냐고? ㅎㅎ 사랑스럽지만 무서운 초등학교 친구들이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것은, 아줌마 여사님들이거나 나의 사회적 정체성 따윈 몰라도 되는 어릴적 친구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대로 움직이는 것이라서, 폭탄을 터트리면 당황도 되지만, 서로 의 사정은 무관하게 우리는 친구! 그래서 웃음이 나온다.
올해는 지난 몇 년과 달리 대학동기들을 종종 만나게 됐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 명은 열정 DNA, 그리고 한국사회의 경쟁구도에 제법 잘 맞는 행운이 따른 친구들로, 서로의 상식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편안함을 느낀다. 각자가 서로에게 내어준 시간의 배려에 감사하다. 예를 들어 굳이 미리 당부하지 않아도, 약속 장소에 오기 전"내비게이션을 보니 얼마 즘 남았다"라고 말하는 상식 같은 것들이다. 또한만나서는 서로의 과업, 가정적, 일상사를 묻고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를 서로 얻는다. 상대방의 열심을 듣고 다시 분발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친구들은 나의 정체성을 대략은 알기 때문인지, 생활패턴이나 일상의 매너가 딱히 부딪히지 않아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사회인으로서 습득한 가치와 상식이 비슷해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체로 어디서 어떻게 볼지, 무엇을 이야기할지,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래도 서로의 코어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 질적인 시간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모호했던 20대에 빈 도화지에 가자가 무엇을 그릴지, 무엇을 시도해 나가는지 함께 보고 있었단 점이다. 지난 시간들을 알아서 한없이 응원하게 되는 게 아닐까.
"괜찮아, 또 각자의 장에서 뛰다가 힘들면 쉬어가, 좋은 에너지와 쉼이 될게"
요새는 스스로 돌아보며, 나는 내게 어떤 행운이란 게 딱히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니 마흔 줄을 넘고, "어 그럴만하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참으로 건방진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변변찮은능력으로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기업이나 학교에 몸담고 있을 수 있는 일 등은 나름대로 큰 행운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