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그대로의 나

문자 충전

@하얀 눈과 전화부스, 그리고 빨간 띠를 한 카푸치노

기억은 내 생각만큼 완전하지도, 사실이지도 않았다. 아직은 겉옷이 필요한 날씨인데도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던 샛노랑, 파랑 부클 소재의 옷을 입고 나서 저 아래 도심으로 나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교회에 가던 길이었는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열네 살이 되던 해, 아직 햇볕이 닿지 못한 응달에는 미처 녹지 못한 눈이 남아 있었다. 부모님을 따라 새로 지어진 단지에 이사 온 뒤로 나름의 적응을 하고 있던 터였다.


30년 만에 기억 속 거리는 널찍한 도로 사방으로 자리 잡았고, 주변에 상가와 제법 차오른 아파트 단지들엔 도저히 그때 그곳을 떠올리기엔 연결될 만한 것이 없었다. 오직 그때 우리가 들어갔던 아파트 단지의 오랜 모습 외에는.


인생은 무엇인가, 그 나약함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라는 상상할 수 없는 비보를 접했다. 가까운 곳이었다. 다시금 인생의 유한함과 나약함에 대해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소식을 접하고, 늘어나는 사망자의 수에 절망이 되었다. 그들의 고통과 극도의 공포를 상상하면, 먹먹해진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다. 내심 그 정도 기적은, 신께서 해봄 직도 하지 않으셨나요?라는 원망도 했다. 누군가는 다행히 동남아 여행을 피했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 없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리라.

@ 광주광역시 북구, 스타벅스 앞 길

여행 중 인스타에서 근처에 예쁜 외관을 가진 카페를 발견했다.

운이 좋았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더 손님이 빼곡하고 지나친 빵냄새로 커피 향을 느끼지 못할 여느 대형 카페에 갈 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카페를 발견한 것은 동생이다. 무한대로 칭찬해 주게 됐다.

나는 그제야 오늘의 하늘이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파란 모습인 것을 알게 됐다. 하얗고 커다란 구름과 파아란 하늘이 조화롭고, 간밤에 내린 눈들이 조화롭다.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 에너지!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잘 모르겠다. 만족스럽고, 즐겁다. 이렇게 새로운 감흥을 주는 일상 속에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톨게이트 옆길의 카페

한 해를 돌아보며, 역시나 올해도 (예상대로) 독서를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이전 해보다 시도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 좋은 생각과 내적 안정감을 다지는 게 낫듯이, 글을 많이 쓰는 것보다 깊이 있는 글을 많이 읽는 것이 더 낫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문학 교과서에서 "생각이 글을 만드는가, 글(문자)이 생각을 만드는가"에 대한 논쟁을 작가가 노정해 가는 수필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그래선지 나를 찾는 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과 마음을 구체화하는 직관과 영감을 독서와 예술작품을 통해서 자극시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