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가 지루할 때는 여행 에세이를 읽는다

최민석, <베를린 일기> /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by 변호사엄마 레지나






6쪽, 최민석, <베를린 일기>, 민음사, 2016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125쪽,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문학사상사, 2004


난롯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 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마감 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 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포도주를 한 병 비우고 위스키를 한 잔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슬슬 잠이 온다. 시계를 보니 10시다. 그대로 포근하게 잠 속으로 빠져든다. 뭔가를 열심히 했던 하루 같기도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하루 같기도 하다.








긴 겨울잠에서 아직 깨지 못한 기분이다. 작년 연말 남편의 대상포진 이후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최신 유행의 A형 독감을 주고받고, 때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행에 몸을 사리다 보니 마음까지 위축된다. 몸과 마음을 수그리다보나 행동에도 제약이 생긴다. 자연스레 '여긴 가도 될까', '저이는 해외에 다녀오지 않았을까', '함께하는 식사자리에 각자 먹는 메뉴는 선택지가 있을까' 등 생각만 많아진다.


'유럽 배낭여행'이 대학생이라면 꼭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시절을 보내 어려서부터 해외여행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오히려 여행을 즐기지 않게 되었다. 그곳이 뉴욕이든 런던이든 아이들과 함께 하면 장소와 무관하게 그곳은 육아하는 삶의 터전이 되어버리는지라, 여행에 대한 의욕이 완전히 꺾인 것이다. 그럼에도 요즈음과 같이 집에서 갇힌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낯선 장소의 이야기를 찾게 된다. '그래, 나는 이미 버린 몸. 자유로운 이들로 대리만족이나 하자.' 하면서.


'자유로운 여행'이라는 게 얼마나 이상적인 단어인지! 하루 종일 베를린의 추위에 떨다 귀가해 뜨거운 물 샤워를 하며 피로를 녹여내고 싶었지만 고장 난 샤워기로 찬물만 속절없이 나오고 있었다는 최민식 작가의 투덜거림. 로마에서는 아내와 테라스석에서 커피를 즐기면서도 의자 아래 양 발 사이에 내려둔 가방을 항시 주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라도 방심하면 가방 속 지갑이 없어진다는 뼈아픈 경험담을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불평하는 하루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자유'와 '여행'이라는 두 단어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가를 느끼게 된다. 애초에 여행이란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 나를 두기 위하여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회사 출근, 회사 퇴근, 집에 귀가하여 엄마로 두 번째 출근, 아이들이 잠든 뒤 두 번째 퇴근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나의 하루란 지극히 안전하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의 여행기(엄밀하게는 생활기)를 읽는다. 그들의 삶은 그곳이 낯선 장소라는 것만 바뀌었을 뿐, 하와이라고 해서, 그리스라고 해서 항상 축제 일리는 없다. 그곳에서도 크고 작게 부부싸움도 하고 자동차 사고나 소매치기와 같은 불운을 겪기도 한다. 그것이 나에겐 위안이 된다. 남의 즐거움엔 그다지 감흥이 없는 심술궂은, 일하는 엄마이라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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