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가면을 벗고 진실의 거울 앞에 서다.

by JayGee JIN
Image_fx (24).jpg

도마복음 6장 1-6절 원문:

1)그의 따르는 자들이 그에게 여쭈어 가로되, "우리가 금식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오리이까? 구제는 해야 하오리이까? 음식 금기는 무엇을 지켜야 하오리이까?" 2)예수께서 가라사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말라. 3)그리고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말라. 4)모든 것은 하늘 앞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5)감추인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고, 6)덮인 것은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


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종종 본질보다 형식을 먼저 묻게 된다. 도마복음 6장에서 제자들은 예수께 금식과 기도, 구제와 음식 금기에 관해 묻는다. 그들의 질문은 온통 '무엇을 어떻게 해야 남들에게 경건하게 보일까'라는 바깥의 규칙들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예수의 대답은 제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내면의 깊은 심연으로 돌려놓는다.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예수는 종교적인 형식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을 가장 경계했다. 우리가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많은 일들이 혹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연극은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 도마복음의 예수는 거창한 의식을 요구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지를 먼저 묻는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6장의 가르침과 깊게 맞닿아 있다.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서 이어지는 이 부분은 매우 조직적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특히 마태복음 6장 1절은 오늘날의 우리도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종교란 본래 의로운 행동이다. 그러나 예수가 강조한 새로운 의로움은 과거의 낡은 의로움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예수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여기서 '더 나은 의'란 행동의 양이 아니라 그 목적의 순수함을 뜻한다. 많은 종교인이 의로운 행동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사람들의 찬사에 두곤 하지만, 예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외식(外飾)'하는 자라는 표현에서 '위선(hypocrisy)'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히포크리테스(hypokrites)'에서 기원했다. 이는 무대 위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를 뜻한다. 즉, 위선자란 진리 그 자체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인 척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다. 역사적 예수가 진정으로 증오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위선이었다. 예수는 세상의 칭찬과는 상관없는 내면의 은밀한 자리, 즉 나의 실존이 하나님과 마주하는 소통만을 생각했다.


도마복음의 살아있는 예수에게 하나님은 멀리 떨어진 초월적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은밀한 가운데 계시며, 은밀한 가운데 보시고, 은밀하게 갚으시는 친근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예수는 제자들이 "금식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처럼 마음에도 없는 행동으로 종교적인 척하려는 모습을 혐오했다.


마태복음 6장 6절의 말씀처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곧 위선의 가면을 벗으라는 초대와 같다.


결국 종교의 본질인 의로움은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과의 깊은 소통에서만 성립된다. 구제할 때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힘은 단순히 신비한 교리 때문이 아니다. 예수가 어느 종교도 제시하지 못한 하나님이 바라는 고매한 도덕적 기준을 인간 세상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장한 인간의 위선을 가장 싫어했던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면을 벗은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도마복음이 '자기 진실성'과 '내면의 일치'에 집중한다면, 현대 정통 기독교의 해석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성도의 겸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전통적인 시각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는 인간의 모든 동기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를 상징한다. 따라서 성도는 단순히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위선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정통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높은 도덕적 기준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본성에서 부활의 열매가 맺혀야 함을 강조한다.


도마복음이 '나의 참된 자아를 찾는 지혜'로서 위선을 경계했다면, 정통 기독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부활의 증거'로서 진실한 삶을 강조한다. 두 시각은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의 위선을 걷어내고 가장 순수한 본성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예수의 핵심 가르침에서 아름답게 하나로 만난다.




이전 06화제5장, 눈앞에 펼쳐진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