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마지막 밤은 늘 조용하지만, 올해의 끝자락은 유난히 무거웠다. 달력이 하루를 남겨둔 새벽, 내가 가장 사랑했던 얼굴이 꿈속에 나타났다. 돌아가신 후에도 혹여 내가 걱정할까 봐, 꿈에서조차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던 어머니였다. 그날의 어머니는 이 세상의 숨을 다하던 순간의 모습으로, 말없이 저편으로 걸어가고 계셨다. 붙잡을 수도, 부를 수도 없는 그 자리에서 나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꿈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
잠에서 깨어났어도 비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차오르는 슬픔은 나를 십자가 앞으로 이끌었다. 기도조차도 잘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영혼이 그곳에서 평안히 쉬도록 축복해 주소서.” 그 한 문장만으로도 목이 메었다. 초를 켜지 않아도 눈물은 빛이 되었고, 고요는 충분한 위로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잃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시간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잃는다. 젊을 때는 바쁨이 핑계였고, 중년에는 책임이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일흔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다. 어머니가 잠들어 계신 곳을 찾지 않았던 그 수많은 날들이, 사실은 내가 나이 드는 것을 외면해 온 시간이었다는 것을. 부모의 묘소를 찾는 일은, 단지 효도의 형식이 아니라 자기 삶의 유한함을 직면하는 일이었음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어머니는 늘 내 걱정을 먼저 하셨다. 당신의 아픔도, 당신의 외로움도, 당신의 두려움도 내 앞에서는 감추셨다. 꿈에서조차 나를 배려하던 그 마음이, 하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밤에야 나를 찾아온 까닭을 나는 안다. 더 미룰 수 없다는 경고였을 것이다. 기억을 정리하라는, 사랑을 정직하게 마주하라는 조용한 부름.
이 밤이 왜 이리도 우울한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울해서가 아니라, 늦게 철이 들어서라고. 상실을 통해서야 비로소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게 되었고, 나이 듦을 통해서야 기도의 언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젊음은 앞을 보게 하지만, 노년은 뒤를 돌아보게 한다. 그 뒤안길에서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새해는 곧 시작되겠지만, 이 밤만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또렷한 밤도 드물다. 그러나 끝이 있기에 기도는 깊어지고, 그리움은 신앙이 된다. 십자가 아래서 나는 다시 어머니를 떠나보낸다. 이번에는 눈을 뜬 채로, 조금 더 성숙한 아들의 마음으로. 그리고 다짐한다. 남은 시간만큼은 더 자주 기억하고, 더 자주 찾고, 더 정직하게 사랑하겠다고.
12월 31일의 새벽은 그렇게, 한 아들이 늙어가며 배운 가장 조용한 슬픔의 교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