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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Feb 12. 2024

우리는 가족이라서 늘 화해하지 (1)

아이의 실수에 대처하는 엄마의 태도

아이는 언제나 나를 머리끝까지 화나게 하고 ”엄마 미안해 “하고 끝내는 식이다.  이 날도 그런 날이었다.


시댁에 놀러 와 기분 좋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카페에서 나는 녹차라테, 아이는 초코 크로와상을 주문했다. 아이는 단숨에 다 먹어치웠고, 나는 빨리 케이블카를 타러 가자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녹차라테는 반만큼 남기고 일어나려던 차였다.


아뿔싸, 아이가 갑자기 손을 뻗는 바람에 내 녹차라테를 내 코트, 가방, 신발에 쏟아버렸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됐다. 서슬 퍼런 초록얼룩이 여기저기 묻어 초토화된 상황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냥 ‘얼음’이 되는 걸 선택했다.


상황을 재빠르게 판단한 남편이 카페행주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내 코트에 뭍은 녹차라테의 흔적을 무려 30분간 지워냈다.


코트의 얼룩을 겨우 지우고 다시 카페로 돌아갔을 때 아이는 남편과 경치를 구경하며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시 열이 올랐다.


화가 잔뜩 난 내 굳은 표정을 보더니 아이는 “엄마, 미안해.”라고 말했다. “카페, 식당 같이 음식이 많은 곳에서는 움직임을 작게 하는 거야. 알았지?”라고 무서운 눈을 하고 아이에게 말했다. “알았어, 엄마.”


큰 폭풍우가 한 차례 지나갔다. 2차 폭풍우는 케이블카를 타는 장소에서 다시 우리를 휘저었다. 티켓을 꺼내려고 가방을 여는 순간, 내 가방 안에 녹차라테가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내 모든 소지품이 흥건한 라테에 한가득 담가진 모습을 보니 아까 식혔던 열이 다시 뿜어져 나왔다.


남편은 이번에도 재빠르게 행동했다. 내 가방과 소지품을 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이는 다시 한번 내게 “엄마, 미안해.”라고 말했다. “네가 빨리 서둘러서 모든 게 다 엉망이 됐잖아! ” 아이를 쏘아보고 몰아붙였다. 아이는 슬픈 눈을 하고 내게 다시 말했다. “엄마, 미안해.”


아이의 눈을 보니 아이의 작은 실수에 큰 화를 내고 있는 미련한 엄마가 된 내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남편은 녹차라테에 얼룩진 나의 모든 소지품과 가방을 깨끗이 씻어내고 말린 상태로 등장했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남편의 차분하지만 무거운 한마디, 자칫하면 아이가 아빠에게 또 한차례 혼날 수도 있겠다 싶어 기회를 가로챘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엄청 여러 번 했어. 이제 다 풀렸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며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아까의 슬픔과 걱정, 불안함은 사라진 듯했다. 혹여아이를 향한 털끝만 한 분노라도 내 안에 남았는지 나의 마음을 살폈다. 놀랍게도 내게 남은 건 아이의 작은 실수에 큰 화를 낸 자신에 대한 죄책감만 남아있었다.


우리는 항상 서로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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