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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쥬 Feb 27. 2024

우리 남편은 언제 아빠가 되었을까?

아이는 남편이 먼저 갖자고 해놓고 내가 먼저 엄마가 됐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저녁,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던 나의 서른 번째 봄을 나는 기억한다. 남편과 손을 잡고 달큼한 벚꽃냄새를 맡으며 산책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올해 아이를 갖자고 해놓고 6개월째 우리 부부에게는 아기소식이 없었다.


“그냥 아기 갖지 말고 우리 둘이 재밌게 살까?”


나의 당황스러운 제안에 조선시대 선비 같은 우리 남편이 그 답게 대답했다.


“어른들에게는 뭐라 이야기하고?”


나는 신여성답게 당당하게 대답하고서 남편의 표정을 힐끗 살폈다.


“그냥 아이가 안 생긴다고 하면 되지.”


짠해 보이는 무표정한 남편 얼굴에 진짜 짠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


남편의 짠한 호소에 나는 쿨하게 웃으며 편의점 신상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이없게도 임신테스트기의 빨간 두 줄을 봤다.


임신 여정은 예상보다 혹독했다. 남편의 짠한 호소에 쿨한 웃음으로 수락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이런 건 줄 알았다면 쿨하게 웃지 못했을 것이다. 빨간 두 줄을 보고 난 후 내 식도와 위장은 신호등 없는 고속도로처럼 먹은 음식을 모두 재빠르게 토해냈다.


그 시기 남편은 고된 업무에 시달렸다. 매일 야근을 하고 축 처진 어깨로 퇴근을 했다. 난 매일 남편이 언제 오는지도 모르고 잠만 잤다.


시간은 매우 느리게 흘러갔고, 나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만 갔다. 나 혼자만 겪고 있는 고독한 싸움 같았다.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항의했다.

“왜 당신은 우리 아기에게 아무런 관심조차 주지 않는 거야?”


남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사정없이 그동안 섭섭했던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편은 아직 아기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했구나.’


나는 24시간 뱃속의 아기를 느끼며 교감하고 있지만 남편은 아빠가 된 다는 기대감보다 무거운 책임감만 느끼고 있는 듯했다.


기다리던 출산예정일이 다가왔고, 나 만큼이나 긴장한 남편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에 출산하는 과정에서 아이와 당신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당신을 선택할 거야. 알았지?”


그때도 난 쿨하게 알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런 순간이 진짜 온다면 난 아이를 선택하고 싶었다. 이미 나에게 아이는 현실세계에서 존재하는 가족이 돼버렸으니 말이다.


다행히 아이와 나,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슬픈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고, 남편과 나는 아이를 향한 서로 다른 사랑의 크기로 아이를 만났다.

남편과 아이와의 첫 만남


남편은 드디어 아이와 만났다. 그 이후 남편은 모든 순간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다. 조리원에서는 아이의 대변을 닦는 연습을 해야 한다며 선생님 호출을 마다하고 본인이 먼저 야무진 손놀림으로 대변을 닦아냈다.


집에 와서는 매일 밤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우고, 새벽에 배앓이로 우는 아이의 배를 정성스레 마사지해 줬다. 배우려는 의지가 충만한 훌륭한 초보 아빠의 모습이었다.


내가 먼저 아이를 사랑해 버렸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동일한 사랑의 크기로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당신은 언제 아빠가 된 것 같아?”

내 질문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이 마지막 한입 남았을 때, 그 한입이 당연히 아이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럼 그 한입을 나에게 줄 때는?”


그때의 감정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기쁨.


하지만 아들의 입에 들어가는 건  ‘양보’, ‘희생’ 같은 고귀한 단어가 아니라고 한다. 그건 아빠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당연한 행동이라 말했다.


우리 남편은 언제 아빠가 되었을까?

내가 남편보다 먼저 엄마가 돼버려 속상했는데, 이제

남편은 나보다 더 깊고 진한 사랑의 의미를 아는 아빠로 성장했다.



네가 즐거우면 아빠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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