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참 뜻
2025년이 벌써 2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결혼을 한지 내가 벌써 5년 차이고, 내 아들이 세 살. 만 두 살이 되었다.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육아를 정신없이 하다 보니 어느덧 내가 서른 중반에 접어들었다.
아이를 낳으면 진짜 어른이 된다.
흔히 어른들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세 살인 아들을 키우다 보니 절감하는 말이다. 아,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되는 중이고, 진짜 인생을 배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인생을 산다'는 한 문장으로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을 함축하기엔 다 담을 수가 없어 아쉽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음,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동안 책과 담쌓고 지냈던 게 여기서 티가 나는 것 같다. 내 어휘력의 한계다.
1993년 10월에 태어난 한 딸아이는 좀 게으른 천성이나, 칭찬받는 걸 좋아해서 선생님과 주변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행동만 하며 자랐다. 나름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호기심도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단 즐거워하는 성격이었다. 배움에 대한 태도가 좋아서 그런지 뭐든 평균 이상은 했다. 다만 무언가 한 가지를 진득하게 하는 지구력이 약해서 특출하게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해서 꿈을 정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니, 꿈을 정하지 못했다기보단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사춘기와 함께 진로와 적성, 자아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그 시골의 10대 소녀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생각하길 포기했던 듯하다. 막연하고 답을 찾기도 어려웠던 적성, 진로, 꿈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성적에 맞춰서, 집안 형편에 맞춰서, 적당하다 생각되는 범주안에서 결정하며 시간을 채워갔다.
게으른 천성은 어쩌질 못해서 적당히 육체적으로 편한 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일, 뭔가 그냥 즐거울 것 같은 선택지들만 골랐던 것 같다. 딱히 큰 욕심도 없고, 목표도 없고 그냥 그런 20대를 보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까지 진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열여덟에 발급받았던 주민등록증이 이젠 사회에서 유의미하게 통용된다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다 적당한 남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세상 자상하고 듬직한 모습에 남은 여생을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4년 연애를 끝으로 부부가 된 것이 21년 10월이다.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천진난만하게 29년을 보낸. 우리 엄마의 착한 딸로서만 살았던 그 소녀가 누군가의 아내가 된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고 해서 생각이 깊어진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이전의 낙천적이고 별 고민 없이 살았던 그 해맑은 삶의 연속이었달까. 좀 더 즐겁긴 했던 것 같다. 잘 챙겨주는 자상한 남편이 옆에 있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누워서 드라마도 같이 보고.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엄마의 착하고 예쁜 딸, 결혼한 스물아홉의 딸아이. 딱 그 정도였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났다. 23년 1월의 어느 날이다. 그 천진난만하고 세상 걱정 없던 해맑은 우리 엄마의 딸이 이제 누군가의 엄마가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엄마'의 역할에 시간이 잘도 흘렀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혼자서는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키 50cm, 몸무게 3.75kg의 생명체를 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이 처음이라 공부할 것도, 배울 것도 많았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폭풍 성장을 하는 중이었고, 그 때문에 좀 적응이 될 새도 없이 새로운 과제가 끊임없이 생겨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천성이 게으르기 때문에 즐겼던 그 모든 나태한 즐거움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내 가장 원초적인 욕구마저도 참고 견디며 완전한 이타심을 체득하는 중이다.
내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생기고 나니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이 없고,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언가 소중한 것이 생겨 지키고 싶다는 것만큼 삶을 애살있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또 어디 있을까.
이러한 이유로 천성이 게으르던 우리 엄마의 착한 그 딸은 스스로 부지런해지고 있다. 가끔 너무 피곤하고 어깨에 곰 200마리가 앉아있는 것 같이 힘들어도 인내하고, 일하고, 더 열심히 치열하게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미래에 대한 고민, 자기 계발에 대한 것, 가치관을 찾는 일 등 10대 때 멈춰버린 내 인생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하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의 무게감을 느끼고 중이고, 누군가의 아내라는 역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된달까. 이런 걸 철이 든다고 표현하는 것 같고, 그래서 아이를 낳으면 진짜 어른이 되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한 지붕 아래 완전한 타인 세 명이 서로 부대끼며 살자 하니, 마냥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내 모든 어휘력을 동원해도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풍부한 감정을 인생 처음으로 느끼는 중인데, 뭐라고 적어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내 짧은 어휘력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우리 엄마의 착하고 예쁜 딸로 살다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2인 가구로 잠깐 행복을 즐기다가, 이제 누군가의 '엄마'역할까지. 세 식구가 된 지 이제 3년 차다. 어찌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3년 동안 천진난만 하고 세상 걱정 없던 우리 엄마의 예쁜 딸은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