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잠 안 자요
엄마는 잠 안 자요, 어느 날 막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물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린이집에 다닐 때쯤이었던 것 같다. 가끔 이 말이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잠자리에 들 때도 엄마가 깨어있었는데 자고 일어나도 엄마는 깨어있는 게 아이 눈에는 이상했나 보다. 엄마를 닮아 그런 건지 몰라도 세 아이 다 어려서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해 떨어지면 눈꺼풀이 내려앉는 엄마처럼 보통 밤 9시 이부자리를 펴주면 아이들은 꿈나라로 직행했다. 그러다 어린이집에도 가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니까 여유 부리려면 7시 정도면 일어나야 했다.
당신 어디 갔었어, 새벽미사를 갔다가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고 있을 때 남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굿모닝,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나를 찾은 것이다. 새벽미사에 가지 않더라도 이런 일은 종종 생긴다. 이른 아침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것이 산책. 그런데 늘 혼자다. 우리는 같은 시간에 누워 자고 엇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은 무서웠다. 이런 것은 맞춰가야 하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자 티격태격할 일이 줄었다. 결론은, 남편은 올빼미 나는 종달새인데 어쩔 거냐고,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지!
젊어서는 비바체로 빠르게 살아야만 했다. 아이가 셋 올망졸망 어렸고, 엄마손이 많이 갔으니까. 몸이 열개라도 모자랐던 때 독박육아로 정신없다가도 혼자남는 자투리시간 뭘 해보기도 전에 허탈감이 밀려오곤했다. '나만의 시간'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쉼표 없이 계속 도돌이표로 살아야 하는 것은 육아에도 살림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갈증을 달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지나고 보니 분주하기는 했어도 아이들 덕분에 활기차고 생기 넘쳤었다.
점차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비례해서. 16분 쉼표에서 8분 쉼표로, 8분 쉼표에서 4분 쉼표로, 4분 쉼표에서 2분 쉼표로 바뀔수록 자투리 시간도 길어졌다. 사치라고 여겼던 '나만의 시간'도 늘어났다. 시간이 해결에 준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세 아이가 클수록 챙겨야 할 일이 줄었고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말이 아이들에게는 혼자서도 잘하고 싶게끔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개성이 강한 세 아이에게 미묘한 경쟁심을 일으킬 정도로.
이탈리아어 안단테 andante는 '걷는 정도의 속도'를 말한다. 내 보폭에 맞춰 살게 되니 일상에 리듬이 생겨서 좋았다.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에 바빴는데... 앞 하고 옆만 보다가 멀리도 높은 쪽도 보게 되었다. '나만의 시간'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좋아졌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보폭에 따라 삶도 달라지겠지만 안단테 안단테.... 약간 느린 속도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일, 살림, 육아에서 찌든 마음도 풀어헤치고.
쉼표 없는 음악은 없다. 쉼표가 적당히, 알맞게 배치되어야 음악이 아름다운 것처럼 일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드디어 한마디를 온전히 쉬어도 괜찮은 때가 왔다. 나이 먹어서 좋다는 게 이런 것인가. 온쉼표의 매력은 충분한 쉼이 주는 여유로움, 느슨함이 아닐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까지도 포함해서.
엄마가 되어 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일찍 일어나 깨어있던 시간, 일과 살림과 육아의 전쟁 같은 삶에서 성장하는 나를 엿볼 수 있었던 시간, 하루하루 살아갈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 시간.... 내게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