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존재가 나를 부양한다
# 크레셴도
비가 그치자 여름이 밀려난 자리에 가을이 들어앉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선선해진 아침, 창밖의 사람들은 한 겹 더 걸쳐 입었다. 오늘 외출할 때 겉옷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직 어둑어둑한 방, 내 책상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편안하다.
해가 뜨면 분주한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의 속도 점점 빨라지고 움직임도 커지겠지. 모든 게 점점 커질, 크레셴도다. 이른 아침의 고요는 사라지고 수만 가지의 자극들에 쫓기고 문제들이 끼어들어 마음이 어수선해질 것이다. 그러기 전, 하루를 살아낼 고요를 담자! 오늘 해야 할 일을 챙겨가면서.
# 데크레센도
요가강사인 친구가 세 번째 겪는 나의 오십견을 보고 어깨가 말리고 몸이 구부정하다며 알려준 동작이 있다. 아프지 않은 팔로 몸을 고정하고 아픈 팔을 흔드는 시계추 운동이나 벽 앞에 서서 손끝을 대고 팔꿈치를 구부린 후 몸을 벽 쪽으로 기울여 스트레칭을 하라고 시범을 보였다. 잠 깨어 몸을 풀 때마다 그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 미소가 번진다.
질병이란 게 취약한 곳을 파고든다는 말이 맞다고 느꼈다. 약한 부분을 채우고 보상하려는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겠지. 덜 쓰고 더 많이 신경 쓰라는 뜻일 테지. 마음도 취약한 곳을 파고들어 통증을 유발하고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조용한 곳에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도할 때 나타나는 분심이나 잡념 같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떠오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니까. 관심을 가져주고 흘려버리면 된다. 내게 삶의 '면역력'을 길러준다. 살아있는 한 새롭게 아파할 일이 생길 것이고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하면서 살아가겠지만. '삶의 면역력'이 아픔 자체를 막지는 못해도 강도는 조절해 주는 것 같다. 적어도 스스로를 들볶거나 속 끓이는 일이 줄어들어 적어진다. 데크레센도가 된다.
점점 커지기도 하고 점점 작아지기도 하는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살피게 하소서,라고 기도로 하루를 연다. 끝기도는 마감은 고찬근 신부님의 저서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에서 뽑은 글로 할 것이다.
"하루를 마감할 때, 사랑을 위해서 오늘 내게서 빠져나가 없어진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할 줄 아는 하루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