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샘에게 보내는 편지

문제에 압도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

by 맘달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엄마 혼자 남은 집에서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다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대니얼 고틀립의 <샘에게 보내는 편지> 였는데 겉장을 펴니 "2019년 5월 6일. 장녀가 줌"이라고 적혀있었다. 다시 집으로 가져와 가끔씩 펼쳐보곤 한다. 그 안에는 절절하게 아파봤고 아픔을 감당한 사람만이 전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빼곡하다.






# 세상의 모든 샘에게 보내는 편지


'겪고 싶지 않은 일'을 당할 때가 있는데 그런 때 어떻게 하면 좋은가?


자신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라던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나도 그런 걸까. 나만 당한다는 억울함에서 비껴 나는 순간 덜 힘들어지는 걸 보면. <샘에게 보내는 편지>의 발신자는 할아버지 고틀립이고 수신자는 손자 샘이다. 고틀립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를 입은 후천적 장애를, 샘은 자폐증이라는 선천적 장애를 갖고 있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가 손자 샘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삶의 지혜를 전해준 책이다. 읽다 보면 고통을 힘겹게 관통한 사람만이 거머쥘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으로 세상의 모든 샘에게 조곤조곤 전하는 말들이 나한테까지 건네졌다.

엽서그림 By momdal

# 문제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나는 '문제'와 '나'를 구분하지 못 압도당하 했었다. '문제'와 '나'를 분리해 내는 게 매우 중요한데, 말이 쉽지 실제로는 쉽지 않은 게 또 하나의 문제였다. 고틀립 같은 맥락에서 샘에게 한 말이 내게도 도움이 되었다.


"네가 자폐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자폐증이 곧 너는 아니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눈앞에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음도 현실과 줄다리기를 하곤 했다. 결국 신만 상처 입고 완패完敗하고 말 걸 뻔히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얕은 수단으로 넘어가는 게 통할 리 없는데도. 겪을 만큼 겪고 당할 만큼 당해야 하는데도. 어리석지만 그때 알았더라면... 이런 건 없는 것 같다. 그때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설사 알았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게 선결조건인데 그걸 부정하는 한, 그때 알았더라고 한들 뭐가 변했겠는가.


눈앞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받아들이고 감당하라. 신이 내게 한 명령이었다. 문제가 네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엽서그림 By momdal

# 담아주는 그릇 - 담기는 것 (container - contained)


상담대학원 다닐 때 유행하던 대상관계이론에서 나오는 용어 중 하나다. 양육자를 담다 주는 그릇, 피양육자인 아이는 담기는 존재로 본다. 어린아이가 느끼는 긴장과 불안, 혼란을 담아주고 아이가 감당할 만한 것으로 되돌려주어야 하는 것인 양육자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은 상담사자나 글 쓰는 사람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그러려면 그릇이 작더라도 단단해야 하고 클수록 좋다. 더 많이 담을 수 있으니 그릇을 잘 빚어서 다듬어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 된다.


담아준다는 것이 무엇일까. 적절한 해답을 책에서 뽑아냈다. 깊이 공감이 가는 문장이기도 하다.


"상처를 입으면 널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거라. 널 비난하지도, 섣불리 충고하지도 않는, 네 아픔을 함께해 줄 사람 곁으로." <샘에게 보내는 편지>



# 내면의 피난처


모든 것을 피해 숨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무도 내 입장이 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무너질 때, 내가 나를 감당하기 힘들 때 숨을 곳이 필요했다. 이런 때 누군가에게 담겨야 하고 누군가가 나를 담아줬으면 했는데... 그런 사람,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그런 사람이 없어도 나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새벽 고요 속에 앉아 내 안에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 사람들은 저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을 신神이라고도 하고 셀프 Self라고도 하는 내면의 나. 거기가 피난처다. 거기에는 문제를 거뜬히 이겨내고 감당해 낼 에너지가 있어서 문제에 압도당하지 않고 스스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해가 짧아졌다. 아직 창밖은 어둡다.

또 내게 주어진 하루, 바쁠수록 한 템포 늦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