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L 학생은 덜컥 영어 연극을 하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모든 시작은 5개월을 기다린 끝에 시작한 ESL 클래스였다. 안 그래도 영어 쓸 일이 거의 없는 주부인데 팬더믹까지 되어서 어디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줌으로 영어를 무료 튜터링 해준다기에 피츠버그로 이사 오자마자 신청했는데 갑자기 튜터분들이 대거 그만두시는 바람에 신청 후 5개월이 지나서야 튜터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오래도록 기다린 덕분일까,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이 단체에서 소개해주는 튜터들이 그렇게 경력이나 튜터링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중간에 그만둔 분들이 많다고 하던데 나에게 배정된 선생님은 정말이지 튜터를 하시기엔 너무 자격이 넘치시는 분이셨다.
카네기 멜론 대학 입시 에세이 사정관이면서 카네기 미술관 도슨트도 하시는 Dana 선생님. 관심사도 너무 비슷하고 좋아하는 작가나 팟캐스트도 같아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의 만남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를 잘하시나 봐요?
이대목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ESL 클래스에서 보는 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영어공부가 필요하다는 뜻... (또르르..) 나 또한 영어를 잘해야만 미국 사람과 이야기 (일상 대화 말고 좀 더 넓은 주제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나는 ‘영어를 못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정말 많이 깰 수 있었다.
일단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머릿속에 내 생각이 정리되면 어떠한 단어를 써서라도 그 ‘콘셉트’을 전달했다. 내 생각을 들은 선생님은 다시 내 문장을 매끄러운 영어로 리프 레이즈 하여 말해주시고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배울 수 있었다. 영어도 결국은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라서 생각을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면 도구는 갈고닦으면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선생님은 늘 나의 맥락 없는 아이디어들에 귀 기울여 주시고 격려해주시며 꼭 다음 시간에는 내가 한 이야기를 메모해 두셨다가 다음 시간에 같이 볼 아티클이나 문장들을 가지고 오셔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가볼 곳은 없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봐 주셨는데 5월 즈음 선생님의 메일 한통이 마음만 먹었던 내 계획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레이스! 혹시 연극한 번 안 해볼래? 오디션이 있다는데?
5월의 끝자락, 꽃바람도 아닌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짧은 메일에 첨부되어 있는 오디션 플라이어에 내 마음이 설레었다. 연극? 오디션? 대사는 당연히 없겠지만 만약 엑스트라라도 된다면 이렇게 미국 사회 안에 한 발짝 걸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연극은 피츠버그의 한 극단에서 피츠버그의 다양한 NGO 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올리는 연극이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이민자와 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연극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2년 전부터 기획한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오디션 플라이어를 받아 들고는 그곳에 ‘이민자’라는 역할이 있다는 것을 보고 적어도 이곳에 지원은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무작정 캐스팅 디렉터에게 메일을 보내고 오디션 날짜를 잡았다.
정말 긴장감 하나 없이, 심지어는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오디션을 보러 갈 정도로 준비도 없이 오디션장으로 갔다. 도착한 곳은 겉으로 보기에도 꽤 역사가 느껴지는 연극극장이었는데 오디션은 극장 건너편에 있는 별관에서 열렸다. 오디션은 3일 동안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이어졌는데 한 사람에 10-15분 정도를 할애하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간 것 같았다.
1차 오디션에서 주어진 것은 신문, 평범한 대화가 있는 종이, 연극 대사 이런 것들이었다. 거기서 하나를 선택한 다음 그 안에 담긴 내용 중 한 줄- 만 읽는 것이었다. 그렇다. 한 줄. 대기 중에 연습을 할 필요도 없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 한 줄로 오디션장에서는 무슨 말을 저렇게 많이 하는지…
막상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자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멘붕 ㅠㅠ) 그러니까 그 대사 하나를 다양한 상황과 페르소나로 ‘연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디션장에 들어가니 1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디렉터, 연기 지도자,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등등…. 이렇게 많은 미국 사람들 앞에서 말해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연기. 연기라니!
내가 고른 대사는 “우리 집은 이 길을 쭉 내려가서 버스 다섯 정거장을 지나야 있습니다.”라는 한 줄의 대사였다. 그걸 디렉터로 추정되는 분이 이것을 아이에게 말하듯이, 짜증이 잔뜩 난 상태로,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라는 상황을 주며 연기를 부탁했다. 일단 잠시 내 안에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을 연기 세포를 발동해서 정신없이 하고 이제 가야지 하고 일어서는 순간, 마지막 연기를 부탁했다.
“자 그럼 이 대사를 시위하듯이 해볼게요!”
What? 뭐라고요?
버스 다섯 정거장 가라는 말을 시위하듯이요?
그러니까. 나는 시위가 뭐더라. 난 한 번도 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저 잠시만요. 하고 나는 티브이에서 봤던 그 시위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면서 나는 유관순이다. 나는 마틴 루터 킹이다 하고 최면을 건뒤 천천히 걸어가며 부르짖었다.
“우리 집은! 이 길을! 쭉 내려가서!
버스로 다섯 정거장을 지나야! (울컥)
있습니다 이아아!”
너무 처절하게 읆어서 눈물이 날뻔했지만… (이 오버쟁이) 울지는 않고 얼른 인사하고 뒤돌아 나왔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건가, 부끄럽고 정신없고 진정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2차 오디션 일정을 알리는 메일이 왔다.
두 번째 오디션을 보러 가는 마음은 정말이지 난감했다. 이번에는 무엇을 하게 될지 연기 경험도 없는 내가 할 수 있을지 자동차 엑셀이 밟히지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도착을 했고 오디션장에 들어갔는데 반에 반이 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디션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는 지난번과는 달리 내 이름에 배당된 대사가 있었는데…오. 마이. 갓. 대사가 한 바닥 가득. 문제는 내가 이 대사가 어떤 말을 하는지 100%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해석이 완벽하게 안된 상태에서는 대사 안에 담긴 감정선을 읽어 낼 수가 없는데 어쩌나. 내 순서가 다가오자 정말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저 내가 이해한 만큼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너무나 예쁜 핑크빛 하늘이 나를 반기는 게 아닌가. 너의 도전을 축하해!라고 하늘 꽃다발을 받는 것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런 용기가 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있었지. 이런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담담해질 만큼 부끄러움을 감내해야 할 시간들이 있었지 하는 생각. 결과가 어떠하든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기회가 되었다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집에서는 우리 집에 대배우가 탄생했다며 할리우드로 이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우리 남편의 이런 변화도 나는 사랑한다.)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자 그냥 이번 기회는 아닌가 보다 하고 좋은 기억 속에 묻어두려던 찰나, 오디션 수락 오퍼가 도착했다. 앞으로의 연습 스케줄과 출연료까지 적힌 정식 오퍼였다. 출연만 해도 기적인데 출연료까지 준다고? (심지어 스타벅스 아르바이트비 보다도 높은 금액이었다..) 마다할 이유 없이 수락 메일을 보냈다. 한국서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미국에서 배우가 되다니! 기쁨은 잠시,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몰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