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i Jan 13. 2022

[해파랑길] 재난 같던 우중 여정

해파랑길 경주 구간 (11코스, 총 11.8km)

(여전히 코로나가 곧 끝날 거라고 믿고 있던 2020년 가을의 초입에 해파랑길을 다녀왔었다. 경황이 없다는 핑계로, 글을 쓰기 어려워졌다는 핑계로 너무 오래 정리를 미뤘다. 너무 옛날 일이 되기 전에 사진이라도 기록해두자 싶어서 남긴다. 잘 기록하는 것보다 당분간 기록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11코스 (나아 해변 -> 감포항, 총 11.8km)


2020 9 중순이었다. 혼자 가는 거였다면 애초에 출발을 하지 않았을 날씨였다. 경주까지 운전해서 혼자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힘들  같아서 여행사 버스를 신청한 터라 그냥 출발했다.

바닷바람 미친 듯이 불어서 눈앞도  보이지 않는데 비까지 쏟아졌다. 걷기 시작하니 바람 문제였던  아니다. 태풍이 지난  얼마 되지 않아 트래킹 코스가 곳곳이 붕괴되어 있었다. 시야도 좋지 않았는데 엎친데 덮친 이었다. 다치치 않고 완주한  다행이다.

인증 스탬프함까지 날아간 상태라 인증 스탬프도 찍지 못한 비운의 코스였다. 하지만 아름다웠고, 후회는 없다. 어떤 순간은 일부러 보려 해도 보기 어려운 재난 같고 소중한 장면이 있다.

날씨가 참.
고개 들고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강했다.
용신이 산다는 거친 바다. 무당이 굿도 하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경주다운 풍경들을 지났다.
이거 길 맞나? 의심이 될 때 주렁주렁 산악회 리본이 맞아준다. 맞다고.
이게 경주인가요. 아마존 아닌가요. 산에서 다같이 길을 잃어서 난리법석도 몇 분 있었다.
몸이 젖고 춥고 힘들다. 코스도 길다.
뭔가 지구멸망 분위기
슬슬 나무가 부러지고 길이 사라지기 시작한 구간
여기도 저기도 사방에 나무 부러짐
참 좋은 길인데, 그런데
파도는 다 삼킬듯이 치고
가녀린 데크들도 사방에 파손. 스릴만점
얘네들은 지금쯤은 복구가 되었을까.
태풍으로 안내판도 뽑혀서 눕고 스탬프함도 날아가서 인증 스탬프도 찍지 못했다.

세상에 혼자 하면 못할 일이 많다. 혼자 갔다면 조용히 경주 맛집이나 찾아가고 커피나 마셨을 텐데. 코스 끝에 여행사 버스가  기다린다 생각하니 죽자 사자 걷게 되었다.  오는  대수라고 생각하지 말자. 태풍이 지나갔다고 괜찮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들은 오래 흔적을 남긴다. 날씨 좋은 때는 다니기 좋은 길일 것 같다. 길이 다 잘 보수되었다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해파랑길] 눈부신 강릉 바다, 하늘, 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