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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봄바람의 맛

계절의 맛, 죽순 영양밥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에 있는 대형 농협 마트에 간다. 집 근처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이고,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평상시들르기는 또 쉽지 않은 곳이다.

 다른 계절과 달리 봄철에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일주일에 한두 번도 방문한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봄나물과 새순 등을 제일 먼저 그리고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데, 봄 제철 나물은 오랜 기간 판매하지도 않는 데다 어떤 나물은 수확 초반부와 후반부의 품질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가급적 그때그때 처음 나온 물건을 사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확한 시기를 어림잡기란 쉽지 않아 헛걸음하기 일쑤다. 지난해 여름부터 겨우내 벼르고 별렀가죽나물이나 죽순이 나올 쯤이라 생각되어 가보았지만 어느 것은 나와 있고, 어느 것은 정확한 날짜까지는 알 수 없지만 조만간 나올 거라는 얘기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죽순(그 옆으로는 동충하초와 두릅, 완두)

 죽순은 주로 봄철에 수확한 것을 삶아서 진공포장하거나 통조림 등으로 가공하여 판매하는데, 가공된 것도 식감은 좋지만 아무래도 제철에 먹는 것만 못하단 생각이 들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생죽순을 얻게 되었는데, 죽순을 반으로 갈랐을 때 나는 향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죽순을 갈라보면 마디가 층층이 나 있어서 속이 비어 있는데, 그 빈 공간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향기가 나는 듯 나지 않는 듯 오묘한 기분이 들어 코를 좀 더 바싹 가져다대보았다.

 눈을 감고 있으니 갑자기 어디선가 ‘쉬이이-’ 하고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순 향을 맡느라 눈을 살포시 감았다 떴을 뿐인데, 부는 듯 불지 않는 듯 머리칼이 사뿐히 날리는 그런 정도의 바람이 부는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었다. 바람에 스며 있던 그 시원한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은은하고 맑았으며, 깨끗하고 단정했다.


 수확한 지 오래되지 않아 촉촉함이 살아 있는 죽순은 밑동과 윗부분을 살짝 자른 뒤 반으로 가르면 껍질을 벗기기 수월하다. 죽순 껍질에는 자잘한 털이 많은데, 맨손으로 만지면 까슬한 털 때문에 손이 빨개지기도 한다. 그래서 위생장갑을 끼고 껍질을 제거하면 편하다.

 껍질을 제거하고 삶아도 되고, 삶은 뒤 제거해도 되는데 나는 껍질을 제거한 다음 삶았다. 죽순은 껍질이 반, 속살이 반이어서 껍질만 제거해도 크지 않은 솥에 삶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산 성분과 떫은맛을 제거하기 위해 쌀뜨물에 삶은 다음, 맹물에 담가두어 아린 맛이 빠지도록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죽순을 건져 모양이 예쁘게 살도록 잘랐다. 자르면서 하나 집어서 맛보니 감자 같기도 하고, 옥수수 같기도 한 고소한 맛이 난다. 죽순과 옥수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하여 찾아보니 대나무는 벼목 벼과 대나무아과의 여러해살이 상록 식물이고, 옥수수는 벼목 벼과 기장아과의 한해살이풀로 친척 관계였다.


 그러고보니 밭에서 키웠던 옥수수도 대나무처럼 마디가 생기면서 자랐고, 대나무와 마찬가지로 공기뿌리가 생겼었다. 또 대나무의 꽃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옥수수의 수꽃과 모양이 비슷했다. 하지만 꽃이 피면 조만간 열매를 먹을 수 있어서 반가운 옥수수와는 달리, 대나무의 경우엔 몇 십 년 혹은 백 년 이상 지나야 꽃이 피는데, 꽃이 피면 얼마 안 가서 그 숲의 모든 대나무가 다 죽는다고 한다. 옥수수의 꽃이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면 대나무의 꽃은 끝을 뜻하니 그것이 어쩌면 가장 큰 차이점인지도 모르겠다. 몇 십 년 만에 그것도 죽기 전에 단 한 번 꽃을 피우는 대나무라니 어쩐지 처연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수의 식물이 죽기 전 단 한 번 꽃을 피우는데 어째서 대나무 꽃에는 다른 감정이 드는 것일까. 아마도 다른 식물들과 달리 대나무는 사람의 평균 수명과 비슷한 시간을 살고 난 다음 꽃을 피우고, 얼마 안 가서 그대로 모두가 동시에 생을 마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죽순영양밥

 씻어서 불린 쌀과 약간의 기장을 두꺼운 무쇠 냄비에 넣고, 다시마를 쿡 꽂아 넣은 뒤 안쳤다. 밥물은 곡식과 같은 양을 넣었다. 우리 식구들은 채소만 들어간 영양밥을 좋아하지 않아서 고명으로 쓸 간 돼지고기도 조금 볶았다. 돼지고기 고명은 진간장과 약간의 설탕(혹은 올리고당이나 꿀), 다진 마늘을 넣고 기름에 한 번 볶아내면 된다. 여기에 맛술이나 청주(식초도 가능)를 센 불일 때 조금 넣어주면 잡내가 제거되어 좋다.

 쌀 위에 찰방찰방하던 밥물이 잦아들면 뚜껑을 열어 다시마를 꺼내고, 주걱으로 위아래를 한 번 섞어준다. 그렇게 하면 누룽지가 덜 생기는데, 누룽지를 좋아한다면 생략해도 되는 과정이다. 이때 손질해둔 죽순과 꽃 모양으로 자른 당근, 동충하초를 조금 올렸다. 동충하초가 없다면 생략해도 된다. 나는 동충하초의 색과 꼬들꼬들한 식감이 좋아서 넣은 것이다. 그런 다음 뚜껑을 덮고 불을 확 줄였다가 타닥타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밥이 눋는 듯한 냄새가 나면 불을 끈 뒤 얼마간 뜸을 들인다.


달걀버섯국

 밥을 뜸 들이는 동안 함께 먹을 달걀버섯국을 끓였다. 기본 멸치 맛국물을 냄비에 붓고 팔팔 끓을 때 참치액과 맛술로 간한 달걀물을 와르르 부어 익힌다. 불에서 내리기 전에 냉동실에 소분해두었던 팽이버섯과 쪽파도 조금 넣었다. 짭짤한 까나리액젓과 매운 후춧가루를 조금 넣으니 오랜 시간 공들여 끓인 국 못지않게 맛있다.

 요즘은 오이가 비싸지 않은 철이어서 장 보러 갈 때마다 두어 개씩 사온다. 크기가 엇비슷하지만 모양은 제각각이 되도록 빗썰기한 다음, 약간의 설탕을 미리 뿌려서 절였다. 양파도 조금 썰어서 넣었다. 오이를 절였던 볼의 바닥에 약간의 수분이 생기면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까나리액젓과 식초 한 방울 그리고 참기름을 넣는다. 부순 통깨를 고루 섞어주면 때마다 부담 없이 집어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된다.

 깍두기는 풋마늘 김치를 담그느라고 만들어두었던 양념으로 만든 것인데, 풋마늘 김치보다도 더 맛있게 되었다.


 냄비 밥을 퍼서 파스타볼에 담았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둔 간 돼지고기 고명을 듬뿍 올렸다. 죽순의 멋들어진 모양 때문인지 남편이 잘 먹었다. 남편은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신경 써서 잘 담아주면 밥을 더 잘 먹는다. 물론 고기 고명이 없었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식단>

- 이 계절의 별미, 죽순영양밥

- 쉽게 쉽게 끓여 먹는 달걀버섯국

-  삐죽빼죽 빗썰어서 무쳐 먹는 오이무침

- 풋마늘 김치 양념으로 만든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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