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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이겨내는 방법

계절의 맛, 전복 닭백숙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름이라고 답한다. 삭막한 겨울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는 꽃 많은 봄도 물론 좋아하지만, 봄과 여름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그래도 여름이 더 좋다. 하늘에도, 숲에도, 사람에게도 생명력이 넘쳐흐르는 여름엔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을은 쓸쓸해서, 겨울은 황량해서, 봄은 한 해가 바뀌어서 이따금씩 우울한데 여름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제일 좋다.


전복 닭백숙

 한낮이면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는 요즘, 원기를 충전할 수 있도록 몸에 좋은 전복과 동충하초를 넣고 닭백숙을 만들었다. 깨끗하게 씻은 닭 속에 씻어서 불린 찹쌀과 기장, 황기와 같은 약재를 넣고, 다리 옆 껍질에 칼집을 내어 꼰 두 다리를 찔러 넣은 뒤 큰 냄비에 넣었다. 평소 압력솥으로 관절이 다 물러지도록 푹 삶는데 아이들이 닭고기를 손에 들고 뜯는 걸 좋아해 이번엔 냄비에 끓이기로 한 것이다. 맛국물을 붓고, 껍질을 깐 통감자와 대추 몇 알, 동충하초, 소금을 넣고 센 불에 올렸다. 

 닭백숙에 감자를 넣으면 국물에 전분기가 배어 닭백숙을 다 먹은 뒤 남은 국물로 죽을 끓일 때 끈기가 더해져 더욱 맛있다. 단, 감자를 자르지 않고 통째로 넣어야 국물이 지저분해지지 않는다. 

 한소끔 끓인 뒤 불을 줄여서 뭉근하게 한동안 삶은 닭고기를 젓가락으로 찔러보고, 젓가락이 쑤욱 들어가면 손질해둔 전복과 통마늘을 넣는다. 이번엔 전복이 익을 정도로만 끓인다. 

 동충하초를 넣은 닭백숙은 마치 강황을 넣은 것마냥 색이 노랗다. 우연히 ‘양재 하나로 클럽’에서 보고 그 색과 모양이 예뻐서 구입하게 됐다.


주황색이 동충하초

 처음 동충하초를 보았을 때, 나는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벌레가 있나 하고 말이다. 동충하초라는 것이 원래는 그 이름대로 겨울에는 벌레이고 여름에는 풀(?)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겨울에는 벌레였다가 여름이면 풀(?)이 된다니, 사람으로 치면 겨울에는 사람이다가 여름에는 나무가 된다는 소리인가? 

 동충하초는 가을과 겨울에 종균이 벌레의 몸에 침투했다가 이듬해 초봄에서 여름 무렵 죽은 벌레의 몸을 뚫고 나와서 그대로 자란다. 그래서 겨울에는 벌레이고, 여름에는 풀(버섯)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동충하초를 아무리 살펴봐도 벌레가 보이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으니 미리 손질을 해놓고 판매하는 건가 싶어 다시금 살펴봤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알아보니 요즘 마트에서 판매하는 동충하초는 벌레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곡물(귀리)에서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동충하초 밑에 죽은 벌레가 있으면 식재료로 사용하기에는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기에 국내 학자들이 연구해서 만들어냈단다. 그래서 현재 유통되는 동충하초는 맨 아랫부분의 배지(귀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다. 음식을 노랗게 물들여 보는 맛을 더하는 동충하초는 꼬득꼬득한 식감도 일품이다. 요모조모 쓸모가 많은 식재료라서 나는 동충하초에 완전 빠지고 말았다. 


전복회와 초고추장

 싱싱한 활전복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서 한 팩 구입했는데, 저녁밥 지을 때까지 냉장실에 보관했던 활전복이 깨끗한 솔로 빡빡 문지르니 꿈틀댔다. 그걸 보는데 왜 내 살갗이 따가운 느낌이 들었을까. 도저히 더는 손질할 수 없어서 전복을 냉동실에 넣었다. 꽝꽝 얼지 않을 정도로만 냉동실에 두었다가 다시 문지르니 이번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전복이 너무 싱싱해도 문제다.

 손질에서의 애로 사항은 차치해두고 보면, 나는 전복이 참 좋다. 싱싱한 전복을 바로 슬라이스해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좋다. 회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오징어나 조개류의 회는 먹는데, 그중 최고가 꼬독꼬독한 식감이 일품인 전복이 아닐까 싶다. 꼬득꼬득, 뽀득뽀득, 오독오독.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식감이다.

 닭백숙에 넣을 전복은 껍데기를 제거하고 칼집만 내서 통으로 두고, 나머지는 회로 먹기 위해 슬라이스했다. 닭백숙을 끓이는 데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회로 먹을 전복은 밀폐용기나 그릇에 비닐랩을 씌워서 냉장고에 바로 넣었다. 


돌나물 샐러드

 닭백숙에는 아무래도 상큼한 반찬이 필요하다. 그래서 돌나물과 채 썬 양파와 당근에 초고추장 소스를 얹었다. 돌나물을 미리 무쳐 놓으면 숨이 팍 죽는 것이 싫어서 무치지 않고 양념을 얹어서 냈는데 이 음식을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했다. 무치지 않았으니 돌나물무침은 아닐 테고. 그래서 돌나물 샐러드라고 이름 지었다.


곰삭은 묵은지와 깍두기

 묵은지도 식탁에 올렸다. 평소에는 별로 대접받지 못했던 푹 곰삭은 묵은지가 제대로 대접받는 순간이 바로 이런 때다. 삶은 닭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나도 시큼한 묵은지에 닭고기 한 점 얹어 둘둘 싸서 먹으면 그런대로 맛있다고 느낀다. 여기에 아삭아삭 씹는 식감을 더해줄 깍두기 한 접시! 무엇이 더 필요할까. 


닭죽

 동충하초를 넣어서 닭죽 색깔이 누르스름한 것이 아주 맛나게 잘되었다. 감자에서 빠져나온 전분기와 닭 껍질에서 나온 기름기가 만나서 국물이 입에 짝짝 붙었다.

 식구들이 모두 맛있게 잘 먹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식사량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닭고기가 조금 남았다. 식구들이 모두 일어나면 비닐장갑을 끼고 뼈에 붙은 살코기를 알뜰히 발라낸다. 그런 다음 닭 국물에 맛국물을 조금 추가하여 남은 찹쌀죽과 함께 한소끔 끓인다. 이렇게 만든 닭죽은 다음날 든든한 요기가 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밤 열 시쯤 식구들이 모두 잠들면 그때부터 책상 스탠드를 켜고 혼자만의 ‘몰입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어서 아침과 낮에는 약이 다 닳은 장난감 인형처럼 느릿느릿한데, 심야만 되면 정신이 맑아지고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다.

 매일 꾸준히 갖는 네다섯 시간 정도 되는 몰입 시간의 위력은 대단해서, 그 시간에 집중해서 책도 읽고, 습작 중인 극본도 쓰고, 텃밭 일기나 집밥 일기를 SNS에 공유하기도 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나만의 ‘열심’을 형상화하기엔 정말 알맞은 시간이다. 보통은 새벽 두세 시경 잠자리에 들지만, 어느 때는 새벽 다섯 시에도 잠을 잘 수 없어서 아침 일과를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는 때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누웠다가 피곤해서 그대로 아침까지 푹 자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에 무언가를 했던 날보다 몸이 개운하고 좋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버려서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자꾸 든다. 요즘 들어 체력이 많이 떨어졌음을 느낀다.

 적당히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잘 먹어서 예전처럼 체력을 잘 키우고 싶다. 수도꼭지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보는 것마냥, 요즘은 정말 흘러가는 세월이 너무 아깝다.



<오늘의 식단>

- 전복과 동충하초를 넣은 백숙

- 전복회와 초고추장

- 돌나물 샐러드

- 곰삭은 묵은지와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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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면 좋은 글 <은은한 봄바람의 맛, 죽순 영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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