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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26. 2015

빨간색 이층 버스

런던 그리고 이층 버스와 함께한 순간

영국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빨간색 이층 버스'이다.

런던의 빅벤이나 타워 브릿지, 교대식을 하는 근위병, 엘리자베스 여왕 등에 견줄 만큼 영국 하면 떠오르는 심벌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서 이층 버스를 본 건 경복궁역 근처에서 시내 투어를 하는 버스를 본 기억밖에 없는 듯 하다. 지극히 관광객을 위한 버스인지라 우리네들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을 뿐 더러, 이층 버스라는 게 일상에서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버스는 아니다.


반면 영국에서는 어딜 가던 빨간색 이층 버스가 지나다니는걸 볼 수 있다.

우리네의 마을 버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실제로 이 빨간색 이층 버스는 노선도 매우 다양해서 런던 안에서 웬만한 곳은 버스 하나면 모두 갈 수 있다.

런던에 있는 동안 이층 버스의 편리함에 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 넘버를 보면 숫자 앞에 'N'이 붙어 있는 버스가 있는데, 이건 바로 야간 버스를 뜻한다. 즉 24시간 운행을 하는 버스라는 거다!


마을 버스가 24시간 운행한다니! 얼마나 편리한가!


늦은 시간, 집으로 귀가할 때 막차 시간 때문에 초조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24시간 운행이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에 적지 않은 메리트가 되어 준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런던에 있는 동안 튜브(지하철)를 탄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처음 런던에서 이층 버스를 탔을 때는 줄곧 1층의 빈자리만 찾아 앉았다.

이층 버스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혹여나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서였다. 이층 버스 적응기였다고 해두자.

일층에서 바라 본 버스 내부.
다음 정류장을 표시해주는 전광판이 있고, 그 뒤로 계단이 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일층에 조그만한 모니터가 있는데 CCTV가 비추는 버스 내부 전체를 돌아가며 보여준다.
어쩜 안전봉 색깔까지 마음에 드는지, 민트와 노랑의 조화가 아주 마음에 쏙 들었다.


몇 차례 버스를 타 보고 런던도, 이층 버스도 모두 익숙해질 쯤, 이층으로 올라가 보자 싶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 이층에 오르자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창가 쪽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층에 앉아서 타고 가는 느낌은 일층과는 사뭇 달랐다.

일단 이층에 올라오니 시야가 훨씬 더 넓어졌고,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창 밖의 풍경들은 보다 더 한 눈에, 생생하게 보였다.

특히 이층의 맨 앞자리는 경쟁이 조금 치열하다.

나는 캠든 마켓에서 옥스포드 스트릿으로 가는 길에 딱 한 번 이층 맨 앞자리에 앉아 봤는데, 그럴만한 자리였다.

맨 앞자리는 앞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보다 시원한 뷰를 즐길 수 있다. 그곳이 바로 명당이었다.

나는 줄곧 일층에만 앉다가 이층의 신선함을 경험한 이후로는 항상 버스를 타면 무조건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창가 자리에 앉아 창 밖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재미난 일이었다.

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스치는 창 밖의 거리와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내 눈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뮤직비디오였다.


하루 정도는 여러 노선의 버스들을 갈아타며 창 밖 풍경만 종일 구경해도 재미있겠다 싶을 만큼 나는 빨간색 이층 버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런던에 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정말 하루 정도는 종일 버스 투어를 했을지도 모른다.)


런던의 흔한 이층 버스

이렇게 매력적인 이층 버스가 한국에도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집 앞 정류장에 이층 버스들이 서고, 모두들 버스를 타면 이층 맨 앞자리가 비었는지 확인하고,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 미리 일층으로 내려와 벨을 누르고 기다린다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쩌면 이 빨간색 이층 버스는 영국의 건물들과 거리의 풍경, 영국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일 거다.


영국에 가게 된다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빨간색 이층 버스의 매력에 빠져 보길-.



비가 내리던 날, 버스를 타고 숙소에 가던 중 일층 자리에서 담아낸 런던

#.이층 버스 안에서 적었던 메모들

-2015/02/23 in. London
작은 문화의 차이일 뿐 근본은 같다.
이들도 우리네와 별다르지 않은 일상이라고 계속해서 느낀다.
사람은 다 똑같구나.

-2015/02/24 in. London
영국은 서구 양식과 현대 양식의 조화가 어우러져 있다.
유럽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들이 줄지어 보이다가도 불쑥 현대 건물이 나온다.

-2015/02/24 in. London
일상들을 사진과 영상에 모두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게 아쉽다.


캠든마켓에 가는 길, 이층 버스에서 담았던 런던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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