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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quare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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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cYejee Feb 02. 2021

Square Forest

2. 관찰, 애착의 정도_누군가의 정원 모두의 정원






시멘트가 갈라진 낡은 건물들이 펼쳐진 아파트 단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카메라로 더 가까이 집중하여 관찰일지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든 건 살던 아파트의 재건축 소식이 들리기 시작할 무렵부터였다.


카메라로 바라본 이 동네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이 낡고 네모난 건물들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나에겐 꽤나 애착이 깊었던 동네였기에 사라진다면 내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 기억도 언젠가 바래고 흐릿해질 것이 뻔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를 하고 이쪽 동네에 방문할 일이 있거나 걸어서 집으로 거쳐 지나오는 길에 자주 카메라나 영상으로 단지의 모습들을 담았다.








-누군가의 정원이기도 모두의 정원이기도 한 동네-

뷰 파인더를 통해 발견하는 다양한 새로움은 이 기록에 더욱 흥미를 더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빛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가 흰 시멘트벽을 채우는 장면은 오래도록 가만히 보고 있게 만든다. 이 동네는 걸으며 사색하기 딱 좋은 장소다. 생각을 정리해주기도, 깊어지면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떤 생각에 여백을 마련해 주는 것 같다.

서울 한 복판임에도 이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착각이 든다. 큰 도로를 따라 서 있는 아파트 건물들, 그리고 사이사이엔 동그란 쉼터가 자리하고, 그 사이로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인다.

낮은 나무와 풀들로 조성된 산책로가 어디로든 실금처럼 얽혀있어 그곳에서 학교 가는 아이들, 운동하는 사람들, 강아지를 산책하러 나온 이웃들, 출퇴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심 속에서 휴식하는 곳, 나 역시 정신없이 삶을 살고 과제와 일들이 쌓여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가도 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다 보면 조금은 나를 돌볼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세월이 흘러 차곡차곡 덧입어 만들어진 정원들은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원이기도 했지만 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정원이 되어있었다.






 

































건너편에 새로 지은 아파트도 정원을 가지고 있다. 깔끔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 그런 정원은 조금만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모나고 지저분한 모습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인공의 정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곳의 정원은 자연을 정말 있는 그대로, 자라는 모습 그대로 내버려두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낡고 커다란 단지와 함께 낡아간 시간 동안 등받이처럼 받쳐주던 커다란 나무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지만 그 조그마한 풀을 시작으로 아파트 단지보다도 더 높은 키를 소유한 나무가 일궈낸 튼튼한 정원이 이 동네 속에 조화를 이루며 자라고 있다.

같은 지역의 동네를 경험하거나 살던 사람들에겐 이 곳이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사라진 44동 104호 내 방 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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