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터울의 동생과 나는 극과 극이었다. 나는 깔끔을 떠는 예민한 아이였고, 동생은 자유분방하고 털털한 아이였다. 서로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서 우리는 많이 부딪혔다. 그럼에도 자주 붙어있어서 종종 전쟁을 치르곤 했다. 싸움의 레퍼토리는 대체로 비슷하다. 우리는 서로 어떤 부분을 공략해야 무너지는지 알고 있었다. “이 공부도 못하는 게!” 내가 선공하면 동생은 바로 이 말을 꺼낸다. “이 친구도 없는 게! 그렇게 예민하게 굴 거면 혼자 살아!!” 나는 이 대목에서 항상 무너졌고, 늘 나의 오열로 싸움이 마무리되었다. 예민하고 친구가 많지 않다는 말. 팩트 폭행을 당한 느낌이라 나는 무너졌을 것이다. 동생에 비하면 나는 정말 친구가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동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왔고, 냉장고에 아껴둔 엑설런트를 모두 꺼내어 주었다. 크지도 않은 집에 자꾸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재워 주었다. 대체로 동생과 친구들은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놀았지만, 나는 손님이 왔다는 사실에 꽤 불편한 하룻밤을 보내곤 했다.
학교에서도 나는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는 일이 거의 없었다. 혼자 도시락을 먹더라도 친구 자리로 옮겨가지 않았다. 늘 나에게 다가와준 친구들과 가까워졌고 새로운 학년이 되면 또다시 내 자리와 가까운 친구들과, 나에게 다가와준 친구들과 어울렸다. 늘 친구가 먼저 놀자고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집에만 있는 나를 엄마는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걸스카우트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외향적인 아이가 되어서 반장도 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회성 좋은 사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믿었다. 그날 김경일 교수님의 세미나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때 나는 ‘신임과장 합숙교육’을 앞두고 있었다. 교육에 들어가기 바로 전날, 부서장은 Change agent의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매년, 부서에서는 change agent를 선정한다. 조직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조직원들의 소통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20여 명 되는 부서원들의 고충을 대신 들어주고 부서장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다른 부서 change agent와도 소통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업무상 사람들과 밥 먹고 차 마시기를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부서장이 나를 불러서 성격상 제일 잘할 것 같다고 그 업무를 제안했지만 나에게는 몹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부서장이 바뀔 때마다 나는 같은 제안을 꾸준히 들어왔던 터였다. 어떻게 거절을 할지에 대한 걱정을 안고 나는 예정되었던 ‘신임과장 합숙 교육’을 받으러 갔다. 업무를 잠시 내려놓는다는 설렘, 세미나를 들으면서 실컷 졸아야지 하는 자세로 합숙을 시작했다. 그때 TV에서 많이 본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가 있었다. TV에 나오는 이유는 다 있다.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미있어서 빠져들 때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김경일 교수는 물었다. ‘혹시 나는 성격이 바뀌었다! 이런 분 있으신가요?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성인이 되고 어떤 계기로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요? 아닙니다. 사회가 원하는 스킬을 기르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본인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세요. 그것이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그때 머리를 강하게 맞은 것 같았다. 그제야 사회생활 속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왜 그리 불편하고 답답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나는 원래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외향적인 성격이 우성인자라도 되는 듯 평가를 한다. 그래서 나는 내향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사실 나는 어린 시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나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에너지를 얻는 것도 좋았지만 집에 와서는 거의 침대로 직행해서 뻗어 있었고, 주말에 가족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 있으면 에너지가 저절로 충전되던 나였던 것이다. 외향적인 아이들을 보고 ‘성격이 좋다.’는 공식이 있는 것 같았다. 혼자 있기 좋아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기에 나는 혼자 있는 게 좋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내향적인 면을 숨기고 애써 활발한 척, 사람들을 좋아하는 척하지 않았을까. 혼자 있기 좋아하는 것이 ‘예민하거나’ ‘성격이 좋지 않다’의 동의어는 아닐 텐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그런 생각이 많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아직은 회사에서도 ‘Outgoing’한 사람들을 칭찬한다. 그들은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합숙 교육 후, 사무실로 복귀하여 나는 부서장에게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거절의 의사 표시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애써 친절하게 굴거나, 애써 활발한 척하지 않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인간관계를 다 유지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했다. 나와 반대의 기질에 쓰는 에너지를 줄였더니 그 양이 꽤 되었다. 어린 시절 늘 나의 책상과 의자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던 나의 모습 그대로 나는 나의 테이블에 앉아 혼밥을 마음 편히 즐기기 시작했다. 다른 테이블을 찾아 같이 밥을 고자 하는 사람도 나의 테이블에서 혼자 편히 법을 먹고자 하는 사람도 모두 옳다. 자기 모습대로 살 때 행복할 수 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