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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그래퍼 Mar 10. 2021

와인 감별과 학생 평가는 닮아있다?!

학생부종합전형 정성평가에 대한 단상

1분 35초 만에 6개 잔의 와인 색깔과 향만 느껴 보고서 각 와인잔 별로 어떤 포도 품종인지, 어느 국가의 어느 지역 와인인지까지 단 번에 알아맞힐 수 있을까? 평가자들은 블라인드 테이스팅 평가임에도 신기하게 정확히 일치된 의견을 늘어놓는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와인 자격증으로 불리는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을 갖고 있는 외국인 마스터 2명을 스승으로 모시고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며 와인에 관한 폭넓고 깊은 지식, 탁월한 시음 및 분석 능력을 보여주는 한국인 유튜버가 운영하는 영상채널의 한 장면이다. 전문가 그들만의 진부한 리그가 아닌 초보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전달해주고 유머러스한 진행으로 재미까지 선사해 유튜브 채널 인기가 대단하다. 특히 주로 진행하는 방식이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그들의 감별능력에 와인 초보자부터 애호가까지 모두 열광한다.      

더 이상 와인은 특정 사람들만 즐기는 기호식품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와인을 주제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이 유행할 때만 해도 와인 애호가가 늘어나긴 했지만 대중화되진 않았었다. 이제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하거나 기념일을 축하할 때만 마시는 특별한 술이 아니다. TV, 영화 속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와인을 넘어 일상생활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와인은 현재 우리 삶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 심지어,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유료 회원권을 가입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와인 구매를 위해서일 정도이니.

할인 폭이 커서 가성비와 가심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이 대중화되고 글로벌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호소한다. 와인은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구대륙(유럽), 신대륙(미국, 남미) 구분을 넘어 그 안의 여러 국가 및 세부 지역까지 세분화되어 있어 각양각색의 와인들을 접하게 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보니 선택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로버트 파커나 제임스 서클링 같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의 평점에 의해 와인을 선택하기도 하고 Vivino라는 와인 모바일 어플에서 사용자들이 매긴 점수를 보고 와인을 선택하기도 한다. 값싸고 질 좋은 와인을 구매하는데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다. 시대적 트렌드에 맞춰 이제는 와인 유튜버들의 추천 와인 리스트에 대한 의존도도 커졌다. 그들이 추천하는 와인을 찾아 사서 마시고 그들의 평가와 비교해가며 와인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다.


이렇듯 일상 속에서 평가라는 행위는 늘상 있어 왔다.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매 순간마다 평가를 하며 의사결정을 한다. 평가방식은 소위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로 나뉘는데, 정량평가는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평가방식이고, 정성평가는 수치화되지 않은 다면적인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평가하는 방식이다.

와인을 감별할 때 사용하는 평가방식은 바로 정성평가로서 객관적으로 측정된 정량적인 수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눈, 코, 혀를 통해 시각, 미각, 후각, 촉각을 종합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와인을 감별하는 방식과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은 미묘하게 닮아있다.

최근 정성평가 하면 많이 회자되는 분야는 교육분야이다. 그 중 학생부종합전형의 평가방식으로 정성평가 방식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점수라는 객관적 지표가 아닌 수치화할 수 없는 다면적 요소들에 의해 합격의 당락을 좌우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수치가 아니면 불투명하다는 인식 속에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산도, 당도, 타닌, 알코올, 아로마 등 와인의 각 요소가 결합하여 나타내는 전체적인 풍미를 종합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는 과정은 분야는 다르지만 학생을 평가하는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와인의 향이 비슷한 듯 하지만 과일향, 오크향,  꽃향, 후추향, 토스트향 등 다양한 향의 조합으로 와인마다 느낌이 다르고 입맛에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지원한 학생들의 교과 성적, 교과 외 활동 등이 유사한 듯 보이지만 개인마다 가지각색 갖고 있는 전공적합성, 인성, 잠재능력 등으로 지원한 대학 인재상과 잘 부합될 수도 아닐 수도 있듯이 말이다.

누군가에겐 호평 일색이기도 한 와인이 다른 이에게는 혹평의 와인이 되기도 하고, 유명 와인 평론가들도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와인 평론가 중에서는 와인 산지에 따라 특정 지역에만 강점을 지닌 평론가가 있기도 하다. 그 수많은 전 세계의 와인을 다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터.

이런 이유는 아무래도 와인을 평가할 때 정확하게 측정된 정량적인 수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 맺혀지는 축척된 경험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정성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다.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정성적인 평가를 전문적 식견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는 그들의 판단을 쉬이 의심하지 않는다.


유튜브 채널 영상 속 마스터들 간 블라인드 테스팅 결과가 실제와 틀리는 경우에도 나름의 평가 이유와 느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저조한 평가를 하더라도 그런 와인을 구매하고 마신다 해서 멸시하지 않는다. 와인 병 라벨이 예쁘다던가, 와인향이 좋던가, 별의별 이유가 다 있는 법이라며 그 선택을 존중해줄 뿐이다. 이렇게 쿨 할 수가 있나. 그들의 와인에 대한 평가 한 마디에 매출실적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외부 와이너리 업체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있게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기준으로 평가를 거침없이 쏟아내기도 한다. 와인 경험이 적은 초보자들이 과한 향과 맛을 갖는 와인이나 얄팍하게 편법을 써서 만든 와인에 안주하지 않도록 와인의 복합미,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찐 와인을 알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려 한다. 와인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은 전문성의 무게에 더 힘을 실어주는 듯 하다.

이렇듯 와인 분야에서 정성적인 종합평가를 신뢰하는 분위기는 와인의 오래된 역사와 함께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낮은 평가를 받는 와인을 마신다 하여 인생에 시련을 겪진 않는다. 그만큼 와인 평점으로 인한 영향력과 한국 사회에서 인생의 큰 변곡점이 되기도 하는 대입 평가결과와의 비교는 분명 다른 문제이긴 하다.


아쉽게도 대입 현실에서 정성적 종합 평가에 대한 사회적 입지는 아직 자리 잡히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석차, 등급, 점수로만 한 줄로 세우는 결과 중심의 정량평가가 공정하다는 인식에 머물러있다. 결과를 넘어 과정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정성적 종합평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란 쉽지가 않다. 주관적 정성평가에 대한 불공정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작년 2021학년도 대입부터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학생의 개인정보 및 출신고교 정보 모두를 블라인드한 채 평가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와인 마스터들처럼 블라인드 평가를 했을 때 대학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학생인지 잘 가늠할 수 있었을까?


블라인드 한다 해도 본연의 특성은 드러나는 법이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과학고 및 외국어고인 특목고 정보는 블라인드 처리를 한다 해도 교육과정 특성 상 교과목 이수내용만 봐도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탁상공론식의 교육행정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학생부종합전형 자체가 학생이 처한 교육환경을 고려하여 잠재능력을 평가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전형인 만큼 블라인드 평가는 기존보다 학생의 실질적인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기 쉽지 않아 또 다른 평가의 공정성과 타당성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교육부가 목적한 바 대로 공정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을까. 공정과 역차별 사이 그 어디쯤엔가 우리의 대입제도는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블라인드 평가 제도가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논란을 임시방편으로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개선할 수는 없다. 올바른 평가방식이 한 가지 정답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지 않는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대비할 미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평가 및 교육방식으로 대비할 수 없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 미래 교육을 선도하기 위해 고교학점제, 절대평가, 서술형 수능 도입 등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서 객관식 위주의 정량평가에 매몰되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와 그 저변 확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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