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희 Nov 13. 2024

불나방

글쓰기 숙제로 작성한, 키워드로 자기 소개하기

원하는 것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사람을 흔히 불나방에 비유하곤 한다. ‘불나방’이 이렇게 관용적으로 쓰이는 걸 보면 세상에 가슴 뛰는 어떤 것을 향해 앞뒤 재지 않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나 같은 사람이 참 많았나 보다, 싶다.     


불나방은 날개의 색상과 무늬가 화려하다. 주황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져 화려한 부채를 떠올리게 한다. 자극 추구 성향이 높고 감각이 예민한 나는 외적으로 화려하고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 알맹이(내용)도 중요하지만 알맹이를 담아내는 그릇(형식)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있어빌리티가 중요한 사람이랄까.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 형식이 성에 찰 때까지 일을 밀어붙이는 것이 가끔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뭣이 중헌디.     

불나방이 불빛에 달려드는 건 빛이나 온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음속에 불을 품어 원하는 것, 혹은 새로운 것, 반짝이는 것을 향해 비행할 때의 쾌감이 느껴지는 걸 보면 진정 전생에 불나방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가끔.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불나방이 불빛에 달려드는 건 인공조명에 의해 심각한 감각 이상이 유발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곤충은 태양과 달빛을 등지고 안정적으로 비행하도록 진화했는데, 한밤중 달빛보다 밝은 인공조명이 있으면 기울어지거나 뒤집힌 상태로 조명 주위에서 끝없이 비행하게 된다는 것.     

가끔 내 비행 궤적을 회고하다 보면 제동장치가 고장 난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일단 흥미로운 것에 달려들어 일을 벌여놓지만 힘들면 멈추고 그만 가야 하는데, 누군가 멈춰주지 않으면 한번 시작한 일을 자의로 멈추지 못한다. 과도한 책임감이기도, 혹은 고통에의 역치가 높은 걸 지도, 혹은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스스로가 만든 속박에 갇혀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비행하는 불나방 중력 외에 여러 방향으로 가속하는 힘을 받기에 방향을 판단하기 위해 빛에 영향을 받데, 인공조명 아래에서는 빛을 등지고 돌다가 바닥으로 추락해 버리곤 한다.


조금은 삶을 가볍게 날 듯이 살고 싶은 나빛을 좇아 날개를 펄럭이지만, 밝게 빛나는 것이 달빛인지 인공조명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돌다가 불나방처럼 추락해 버지 않으려면 무지성으로 비행하지 말고 잠시 멈춰 방향을 정비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란 생각을 다시금 하는 요즘이다. 위아래 방향을 판단하는 중력을 느낄 수 있도록 단단한 중심축을 두며 비행해야겠달까. 일단 빛을 분간하는 것부터 해야 하려나. 

추락할 위험이 있을지언정 마음속에 뜨거운 불을 품은, 정(情)이 많고 정(正)을 추구하는 이런 성향이 나는 좋다. 일단 부딪쳐보고자 하고, 경험해 보고자 하고, 도전해 보려고 하는, 그러면서 비행 궤적을 넓혀 성장해 나갈 수 있게 된 데에는 8할이 이런 성향 덕분이리라.      


<월든>에서는 ‘삶을 골수까지 빼먹고 싶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의지 없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생(生)을 경험하는 것뿐이란 생각으로 살고 있으니, 불나방처럼 일단 펄럭펄럭 뛰어들어 휘적휘적 겪어내는, 삶을 골수까지 빼먹으며 비행하는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가의 이전글 음악은 결국 심상에 대한 기억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