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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희 Nov 07. 2022

음악은 결국 심상에 대한 기억일까

어반 자카파를 들으니 환기되는 공감각적 심상

소음에 취약한 환경에서 일하는 탓인지 시끄러운 음악 듣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시끄러운 음악이라 함은 가사가 붙은 온갖 종류의 음악들을 말한다. 물론 가사가 붙는다고 모두 '시끄러운'으로 분류되진 않지만 가사를 알아듣는 것조차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가 싶긴 한데 쨌든 주로 심신의 안정을 위해 뉴에이지나 클래식을 듣곤 한다.

‘음악’을 키워드로 글을 써야 하다 보니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했더라, 내가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이 뭐였더라, 내 음악적 취향은 어땠더라, 떠올려 봤는데 암만 떠올려도 어떻게 풀어내야 하나 고민만 늘 뿐 선뜻 글이 쓰이지 않았다. 나에 대해 글로 풀어내는 게 어려운 탓인가, 싶긴 한데 아마도 이는 나에 대해 온전히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고민한 결과 결국 몇몇 가사 붙은 음악이 떠올랐는데, 그 음악이 왜 떠올랐는지 생각해보니 '사람'과 관련된 기억, 그리고 잊지 못할 순간의 '장면'과 관련된 기억들이었다. 아, 어쩌면 음악은 그 자체로 기억되기보다 심상과 얽혀 기억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새삼 음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어쩌다 깨우친 사실.


음악과 관련된 기억이 있다는 건 너무나 다행인 기억이다. 안 그래도 선별적으로(혹은 굉장히 랜덤 하게)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나의 뇌 덕분(?)에 사람에 대한 기억도, 좋았던 곳에 대한 기억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다양한 감각이 한꺼번에 나를 덮치는 것만큼 귀한 기억이 없으니까. 그만큼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있다는 뜻이니까.

이번 글을 쓰며 떠올랐던 음악은  어반 자카파의 '코끝에 겨울'. 사랑을 해본 적도 없던, 가슴 아픈 이별을 해 본 적도 없는 그 당시의 내가, 그 당시의 그 음악이 떠오르는 이유는 혼자 미국 여행을 갔을 때,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온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됐고, 그 친구도 같이 다닐 친구가 없어서 현지에서 미국의 3대 캐년(canyon)투어를 하는 동안 붙어 다녔는데, 그랜드 캐년을 보러 새벽에 출발할 때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듣던 음악이 바로 그 노래였기 때문이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캄캄한 새벽을 달리다가 서서히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빛을 받던 그 순간, 그 음악을 함께 들었던 기억은 참 특별하다. 분명 해를 바라보며 달리고 있었음에도 마치 죽음으로 수렴하는 듯했던 그 공허한 느낌,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그 풍경이 잊히지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운전을 좋아하지만 운전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마다 그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 이미지를 언어화하는 데 꽤나 애를 먹긴 하지만 무언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주는 묘한 해방감이 좋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빛과 죽음 그 사이 어딘가의 해방감이 주는 자유로움 속에서 비워내는 감각이 좋달까. 어쨌든 그만큼 내겐 그때의 그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했고, 그 감각을 함께 했던 음악도, 그 친구도 그래서 자연스레 떠오른다.

쓰다 보니 이러한 기억들을 쌓아 삶의 부피를 늘려나가는 것도 꽤나 낭만적일 것 같다. 점차 싫증을 내는 주기도 짧아지고 무언가를 깊이 알아가는 게 피곤해지는 요즘이라 의식적으로라도 침잠해서 사람에 대한 기억도,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기억도 차곡차곡 쌓아두는 작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 그러려면 그런 사람과 그런 순간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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