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순간
중2때였나. 아직 음알못이라 음악 잡지에서 좋다고 하면 일단 사서 들어보던 때였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하도 좋다길래 CD로 구입해 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런 걸 '펑키하다'고 하는 건가?' 해설지를 보니 펑크(funk)의 영향이 강한 밴드라고 쓰여 있었다. 평론가의 해설을 듣지 않고 정확히 장르를 맞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 내가 장르도 맞출 수 있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계보니 족보니 따져가며 음악을 들었던 게 말이다. 음악평론가로 활동하면서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그 첫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음악평론가로 살고 있을까? 음악사를 치열하게 파고들거나 모를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낄까? 친구들보다 잘하는 유일한 분야를 찾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래들에게 젠체할 수 있는 유일한 '꺼리를 찾은 게 내 꿈의 시작이었다. 팝송에 대한 사랑은 블러 덕분에 시작됐지만 평론가의 꿈은 레드 핫 필리 페퍼스에서 시작됐다. - 이대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