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계획입니다.
친구 : 야 진짜 오랜만이다!
나 : 언제 밥 한번 먹자!!
친구 : 그럼 오늘 시간 되니?
나 : 오.. 오늘? 아.. 아니… (일정이 비어있음에도..)
나란 사람은 이렇다.
오늘 하루 아무 계획이 없었더라도 예상치 못한 새로운 약속을 갑자기 당일에 잡는 건 질색이다. 오늘은 그냥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계획된 대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고 돌발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릴 적 방학을 맞이 하기 전에 많이 만들어 본 생활계획표.
자기 계발이라 하면 뭐랄까 저런 하루 계획부터 세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가 없을 때는 계획을 따르는 것이 어렵지가 않았다.
실패하는 날도 있지만 그건 대체로 내 사정에 의해서다.
내가 몸이 안 좋다 던 지, 계획대로 하기가 귀찮아졌다던지.
그런데 엄마가 되니 ‘아이’라는 큰 변수가 생겼다.
제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아이가 함께 일어나 버리면 독서는커녕 아이 안고 재우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가 열이라도 나면 만사 제쳐두고 아이 돌보기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 쪼꼬미들은 왜 이리 열 감기를 달고 사는지, 조금만 열이 올라도 엄마는 심장이 철렁.)
오늘 밤 듣고 싶은 온라인 강의가 있어서 잠은 좀 아빠랑 자줬으면 좋겠건만 잠은 꼭 엄마와 자야 한다는 우리 아기.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게 바로 나인데.
아이가 생기니 이래서 계획이란 것 자체를 세우기가 어려워졌다.
요즘엔 그래서 틈새시간 공략을 한다.
누군가 내게 '너는 책을 하루 중 언제 읽어?'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그냥 시간 될 때 읽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도 책이 여러 권 올라와 있고 핸드폰에는 전자책이 한가득이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면서도 읽고 출퇴근 길에도 읽는다.
아이가 잠들고 난 후에도 어두운 밤에 전자책 앱을 켠다.
아이가 이제는 혼자 무언가에 집중하는 순간이 생겨 (현재 28개월) 그런 짬이 생기면 식탁 위에 읽다 만 책도 집어 본다. 점심 먹으면서도 읽는다.
그날그날 다르고 시간 될 때 한다.
독서뿐 아니라 모든 것을 그렇게 한다.
오늘은 아이가 아빠와 목욕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시간을 활용해 뭐라도 한다.
무계획이지만 다 계획이 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