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문
1이라는 수는 아라비아에서 생겨났을까? 아라비아 숫자 1은 1이라는 수를 적는 기호일 뿐이다. 하나, 一, one 등으로 쓰고 있는 1이라는 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내려면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가 보자.
2. 사고여행
주먹코 부족이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온 모양이다. 잡은 물고기 수만큼 작대기 일곱 개를 그었다. 새우를 이천 마리쯤 잡았다면 작대기를 이천 개쯤 그었을까? 두 개쯤 그었을 것이다. 천 마리씩 둘이니까 두 개? 이천 마리를 다 세고 앉았을라고? 토기에 둘로 나누어 담아놓았겠다.
물고기 세 마리를 가지고 양젖과 바꾸러 넙적 방뎅이 부족에 갔다. 물고기 한 마리에 양젖 한 그릇으로 협상이 끝나는 듯했다.
그때 넙적 방뎅이 부족에서 짝궁뎅이가 항의를 했다. 물고기 한 마리는 거의 새끼 크기밖에 안 된다는 거였다. 이에 주먹코 부족의 딸기코가 양젖 그릇 두 개가 다른 하나보다 작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질세라 넙적 방뎅이 부족의 오리궁둥이가, 두 개가 작은 게 아니라 다른 하나가 더 큰 거라고 우겨댔다.
후기를 얼른 써야 해서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못 보고 말았다.
3. 여행후기
두 부족에게 아직 1이라는 수는 있으면서 없다. 작대기로 물고기의 수를 나타내었다는 점에서 작대기 하나는 1이라는 수를 나타내는 숫자 1이라 할 수 있다. 그릇에 담긴 양젖의 양을 그릇의 수로 나타냈으니까 1이라는 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이라는 수가 태동은 되었으되 아직 태어난 것은 아니다. 두 부족이 논란을 종결하고 1이라는 수를 깔끔하게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음 과정을 겪어야 한다.
4. 같으면서 다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 같으면서 다르다.
서로 완전히 똑같은 것을 찾아내 보라. 서로 다른 점이 최소 한 가지 이상 있을 것이다. 그것을 대동소이라고 한다.
역으로 서로 다르기만 한, 수 만 가지의 서로 다른 점을 찾아내 보라. 서로 같은 점이 최소 한 가지 이상 있을 것이다. 그것은 소동대이라 하면 된다.
서로 같으면서 다른 것이 사물의 근본이치이다.
5. 수 1의 탄생
현실의 사물세계에서는 (의식적) 자아가 허용오차(똘레랑스)를 인정해야 한다. 자아의 효율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래야 1이라는 수가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거다.
소동대이에서는 1이라는 수가 생겨날 수 없다. '대동소이하다'라는 걸쩍지근한 느낌에서, '동일하다'라는 개운한 느낌으로의 질적 비약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수 1이 생겨날 수 있다. 자기 느낌의 질적 비약이 필요하다는 거다.
수 1은 그렇게 자기 느낌의 질적 비약과 자아의 효율적 판단이 빚어낸 인간의 창작물이다.
6. 하나와 둘이 서로를 낳고
얼핏 보면 수 1이 먼저 생겨나고 2라는 수를 탄생시킨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동질적 대립인 2, 3, 4라는 수를 전제하지 않으면 수 1이 탄생할 수 없다. 2, 3, 4라는 수를 전제로 수 1이 생겨나고, 수 1을 전제로 2, 3, 4라는 수가 성립되는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나에게 1이었던 적이 없다. 늘 차고 넘쳤다. 과유불급이다. 군자가 화이부동하는 세계를 뒤로하고, 소인이 동이불화하는 세계를 향했다.
'한 사람 여기 또 그 곁에 둘이 서로 바라보며 웃네.'
1975년에, 이주원이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이 부른 <한사람>이라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너나 나나 모두 다 같으면서 다른, 하나의 사람이다. 화이부동의 1을 내게도 마련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