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말철학 연재16
제15장 문턱 앞의 논리 ― 종결이 강제되는 이유
1. 논리는 세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논리는 세계를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논리는 말이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는지를 정하는 형식이다.
어떤 논리를 사용하든,
그 논리는 항상 하나의 질문을 먼저 처리한다.
여기까지 말해도 되는가.
여기서 끝났다고 말해도 되는가.
따라서 논리는
존재의 작동을 비추기 이전에
종결의 위치를 먼저 고정한다.
이 점에서 논리는 중립적이지 않다.
논리는 항상
전이를 어디에서 잘라낼 것인지를
미리 결정한다.
2. 동일률 ― 안정의 조건
동일률은 말한다.
A는 A다.
이 명제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 명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A가
다른 것으로 전이하지 않는다는 조건.
이 조건이 충족될 때
동일률은 안정의 논리가 된다.
그러나 전이가 발생하는 순간
동일률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침전된 상태(S′)에서
동일률은
유지를 설명하는 논리가 아니라
유지를 강제하는 논리가 된다.
여기서 동일률은
존재를 읽는 형식이 아니라
존재가 흔들리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3. 배중률 ― 선택의 강요
배중률은 말한다.
A이거나 A가 아니다.
이 논리는
불확실성을 제거한다.
선택지를 둘로 줄이고,
판정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턱 위에서는
이 선택이 성립하지 않는다.
유지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는 없다.
전이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시작되었다.
이 상태에서
A인가, A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존재의 작동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판정을 강제하는 질문이 된다.
배중률은
여기서 전이를
오류나 지연으로 처리한다.
4. 모순율 ― 작동이 오류로 판정되는 순간
모순율은 말한다.
A이면서 A가 아닐 수는 없다.
그러나 문턱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확히 이렇다.
유지는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 상태는
존재의 실패가 아니다.
전이가 발생하는 정상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기존 논리에서
이 상태는
사고의 실패로 판정된다.
모순율은
존재의 작동을 설명하지 못할 때,
그 작동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만든다.
5. 세 논리의 공통 전제
동일률, 배중률, 모순율은
서로 다른 원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셋은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말은
어디엔가 도달해
끝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즉,
판정 가능한 종결점이
존재해야 한다는 가정.
이 가정이 유지되는 한,
논리는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문턱에서는
이 가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6. 문턱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폭력
문턱 위에서
논리는 선택을 요구한다.
유지인가, 붕괴인가.
질서인가, 혼란인가.
의미인가, 무의미인가.
그러나 이 선택은
존재의 요구가 아니다.
논리의 요구다.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
전이는
하나의 항으로 잘려 나간다.
이때 논리는
존재를 판독하는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작동을 삭제하는 장치가 된다.
7.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
여기서 질문은 바뀐다.
존재는 왜 이렇게 작동하는가가 아니다.
왜 우리는
이 작동을
항상 끝내려 하는가이다.
문턱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존재의 불안정성이 아니라
종결을 요구하는 논리의 형식이다.
이 질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 질문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존 논리가
이 문턱을 통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8. 결론 ― 다음 장의 필연성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설명이 아니다.
남은 것은
종결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전이의 동시 작동을
오류로 만들지 않는
논리 형식이다.
이 형식은
제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 문턱에서
요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장에서 등장하는 논리는
새로운 선택지가 아니다.
그것은
이 장이 끝났다는 말 자체가
아직 성립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불가피하게 호출되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