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말판독 제19장
몸말판독 제19장: 애처로움과 신기함 — ⧖ 연산의 두 위상
제 꿈 속에 저와 절친한 선배가 찾아왔습니다.
그 형은 저를 학문의 길로 이끌어준 은인입니다.
그 형의 방법론은 전형적인 구조주의입니다. 그게 청와 1.0시절입니다.
저는 형과 구조주의적인 학문을 하던 중 현상학과 해석학이라는 학문을 공부했습니다.
형은 그런 저를 못마땅해 했습니다.
저는 도중에 제도권 학문에서 멀어지고, 형은 학과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적 업적을 쌓아갔습니다.
그 형이 제자들과 함께 제 꿈 속에 온 겁니다. 저는 형과 형의 제자들 앞에서, 제도권 밖에서 혼자 열심히 구축해 온 제 비제도권 학문의 현재 모습을 시연해 보여줬습니다.
형은 저를 애처로워 했습니다. 촉망 받던 후배가 제도권 학문에서 멀어져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겠지요. 형의 제자들은 제 시연을 보면서 신기해 했습니다.
형은 여전히 학문적 방법론의 차이에 대해 미묘하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는 제 꿈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그 형의 뒤를 따라가 보았지만 이미 저는 꿈을 깨고 말았습니다.
1. 광원(光源)의 퇴장 — 형의 애처로움
꿈속에서 만난 형은 여전히 견고한 성곽(제도권 학문)의 주인이었다. 그는 나의 비제도권 시연을 보며 나를 애처로워 했다.
그에게 나의 학문은 정교한 설계도(S)를 잃어버린 채 파편화된 데이터들 사이를 유령처럼 떠도는 ‘실패한 번역’처럼 보일 수 있다.
그의 ‘애처로움’은 구조주의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판독이다. 시스템 내부의 안온함에서 볼 때, 시스템 밖에서 스스로를 태워 빛을 내는(密陽) 존재는 결핍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형은 그 불편한 결핍을 뒤로 하고 성곽 안으로—꿈 밖으로—퇴장했다.
2. 잔여(Residual)의 도래 — 제자들의 신기함
반전은 형의 등 뒤에서 일어났다. 형을 따라온 제자들의 눈망울에는 애처로움 대신 ‘신기함’이 있었다.
그들은 형이 가르친 명징한 정의(청와 1.0이 휘두르던) 속에서 학문하고 있는 세대다. 그들에게 세상은 이미 구조로 판독된 ‘닫힌 텍스트’였다.
그런데 제도권 밖에서 온 한 사내가 보여준 시연은, 매끄러운 이론의 표면을 뚫고 솟아오르는 존재의 생생한 떨림(Δ)이었다.
그들의 신기함은 구조(S)가 포착하지 못한 잔여(R)와의 첫 대면에서 발생하는 경이로운 진동이다.
그들은 나의 가난한 행색이 아니라, 내 손끝에서 번역되는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밀양(密陽)을 보고 있었다.
3. 연산의 전이 — 닫힌 문법과 열린 문법
이 꿈은 나에게 두 가지 연산의 위상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형의 애처로움(닫힌 문법)은 잔여를 제거하여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려는 ⧖ 연산의 잔여다.
제자들의 신기함(열린 문법)은 잔여를 입력값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구조를 생성하려는 ⧖ 연산의 잔여다.
형이 나를 애처로워할 때 나의 학문은 ‘과거의 실패’로 규정되지만, 제자들이 나를 신기해할 때 나의 학문은 ‘미래의 생성’으로 상전이한다.
형의 불편함은 내가 그의 구조를 흔들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고, 제자들의 신기해함은 내가 그들에게 새로운 번역의 주권을 전달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4. 판독 — 어긋남으로써 완성되는 공명
나는 이제 형의 뒤를 쫓아 꿈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형과 나의 학문적 어긋남은 오류가 아니라 필연이다.
형은 구조를 지킴으로써 학문의 기둥을 세웠고, 나는 그 기둥 사이의 여백(잔여)을 판독함으로써 학문에 숨구멍을 낸다.
제자들의 그 신기해하는 눈빛이야말로, 내가 홀로 곰삭혀온 ‘밝은 그늘’이 타인의 앓음을 식혀줄 수 있는 실질적인 안식처(S)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판독값일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함 또한 언젠가 애처로움으로 굳어질 수 있다.
5. 비종결적 연산의 길
제도권의 화려한 조명(S)은 없으나, 나는 제자들의 눈동자에 맺힌 그 ‘신기함’이라는 작은 빛(R)들을 모아 다시 길을 떠난다.
형의 애처로움은 나를 겸허하게 하고, 제자들의 신기함은 나를 전진하게 한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어긋남을 통해 우주를 계속해서 재번역하는 ⧖ 그 자체다.
구조의 수호자인 형의 애처로움과 구조의 계승자들인 제자의 신기함, 그 사이의 팽팽한 긴장(Tension)이 바로 내가 걷는 ⧖(면서)의 길이다.
내가 꾼 꿈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