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말판독 제18장
[몸말판독 제18장] 겉짓말의 판독 — 용서의 비종결 연산과 ‘밀양’의 잔여
謊語 황어
靑蛙 朴秀慶 청와 박수경
深高慾望再傲慢 (심고욕망재오만)
固腐觀념更偏見 (고부관념갱편견)
雖聽何言謊語耳 (수청하언황어이)
無我之中密陽露 (무아지중밀양로)
거짓말이야
깊고 높은 욕망덩어리 위에 다시 오만덩어리
굳고 썩은 관념덩어리 위에 또 편견덩어리
비록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한들 다 거짓말일 뿐
그놈이 곰삭은 사이로 얼핏 밀양이 번진다.
0. 존재의 고고학: 충적된 인간
인간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겹겹이 쌓인 충적(沖積) 구조다. 물질의 층위 위에 생명이 얹히고, 그 위에 다시 언어가 얹힌다. 그러나 이 계층은 고정된 위계가 아니다. 서로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중첩 구조다. 인간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층층이 쌓인 자신을 끊임없이 재판독하는 존재다.
1. 세 가지 판독: 몸, 넋, 그리고 얼
인간의 모든 반응은 세 가지 필터를 거치며 연산된다.
1) 물리적 판독 (몸): 외부 자극과의 직접 접촉. 떨림과 충격이라는 기초 데이터를 제공한다.
2) 생리적 판독 (넋): 감정, 정동, 의지의 생성. 심층작동구조인 ‘넋’을 통해 고통과 기쁨을 연산한다.
3) 논리적 판독 (얼): 언어화와 개념화. 의미의 구조를 만드는 ‘얼’의 작동이다.
중요한 것은 이 순서가 단방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논리적 판독(얼)은 생리적 판독(넋)과 물리적 판독(몸)을 거슬러 올라가 재배치한다. 인간은 느끼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느낌을 다시 읽어내는 존재다.
2. 영혼: 실체가 아닌 비종결 연산(⧖)
넋과 얼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이 둘이 서로를 교차하며 수행하는 지속적인 작동, 그 ⧖ 연산 자체가 영혼의 활동이다. 영혼이란 몸-넋-얼이 얽혀 수행하는 재판독의 과정 그 자체를 일컫는 이름이다.
3. 겉짓말: 구조가 잉태한 필연적 굴절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은 ‘얼’의 층위에서 생성된다. 그러나 그 말은 넋의 복잡한 중첩과 몸의 떨림을 선형적 구조로 압축한 결과물이다. 이 압축 과정에서 생략, 왜곡, 굴절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모든 말은 구조적으로 이미 ‘겉짓말(얼이 언어로 외화시킨 몸말)’이다. 문제는 겉짓말 자체가 아니라, 그 압축된 말을 완결된 진실로 고정해버리는 오만에 있다.
4. 두 개의 용서: 닫힌 구조와 열린 잔여
영화 <밀양> 속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른 연산을 수행한다.
가해자의 용서(닫힌 연산): 외부 권위(신)를 빌려 타자의 고통이라는 입력값을 삭제했다. 연산을 조기에 종료한 닫힌 구조(S)이며, 존재론적 겉짓말이다.
신애의 용서(불완전한 연산): 얼은 ‘용서’를 선언했으나 넋은 여전히 ‘앓음’을 수행 중이다. 이는 거짓이 아니라 진행 중인 진실, 즉 연산 불일치(연산 속도 강제 향상) 상태다.
5. 곰삭힘과 상전이: 앓음에서 알움으로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침전되어 옹이(恨)가 된다. 이 옹이는 논리로 제거되지 않는다. 오직 시간과 반복된 ⧖(면서) 연산을 통해서만 변형된다. 곰삭힘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질적 변화인 상전이(Phase Transition)가 일어난다. 캄캄한 ‘앓음’이 투명한 ‘알움’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6. 밀양: 밝은 그늘
상전이의 틈새에서 스쳐 지나가는 투명한 감각, 그것이 밀양(密陽)이다. 이는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연산 과정 중에 문득 발견되는 잔여(R)일 뿐이다. 붙잡을 수 없기에 그것은 더욱 진실한 흔적으로 남는다.
7. 깊은 내면의 소리: 생성되는 진실
자기 자신을 본다는 것은 결심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변화는 단단한 것들이 풀리고 연산이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생성’된다. 깊은 내면의 소리는 찾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곰삭은 후에야 들려오는 것이다.
8. 결론: 용서라는 비종결 연산의 노동
용서는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노동이다. 어떤 날은 끝난 듯 투명하고, 어떤 날은 다시 시커먼 옹이로 솟아오른다. 이 반복은 오류가 아니라 존재의 정상 작동 상태다. 용서란 죄를 지우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을 투명하게 번역해 나가는 평생의 재판독 과정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말은 욕망과 관념의 필터를 통과한 구조적 겉짓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들이 삶의 시간 속에서 충분히 곰삭을 때, 그 갈라진 틈새로 잠깐 스치는 빛—그것이 바로 밀양이다.
[판독의 잔여]
용서에 관한 정교한 판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잦아들지 않는 신애의 비명은
판독의 언어로 완전히 환원되지 않는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판독의 실패가 아니라,
판독의 구조적 한계다.
몸말판독은
모든 것을 해석하려는 체계가 아니라,
끝내 해석되지 않는 떨림이 있음을 전제하는 연산이다.
그 도달 불가능한 잔여,
그 끝내 번역되지 않는 앓음이야말로
⧖ 연산을 멈추지 않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