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사라진 아침

어느 날,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by 유영

2016년 1월 18일, 고등학교 2학년 봄학기 개학을 앞두고,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라졌다.


그날은 나와 동생들만 집에 있었다. 엄마는 늦둥이 막냇동생을 출산한 지 8일밖에 안 됐던 시기였기에 조리원에 있었고, 아빠는 새벽에 출근한 상태였다. 아빠가 일찍 출근하니까 전날 밤 동생들과 같은 방에서 함께 잠들었고, 아침에 현관 벨이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 후다닥 일어났다. 아이들 셋만 있는 게 걱정된다며 외할머니가 집에 오신 거였다. 그때부터 알 수 없는 심한 어지러움이 시작됐다. 가끔 갑자기 일어나면 잠시 현기증이 날 때는 있었지만,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극심한 어지러움이었다. 너무 어지러워서 속이 울렁거리니까 진정하고자 마신 물이 오히려 속을 뒤집어놓았고 재빨리 화장실로 들어갔다. 처음 느끼는 이상신호에 온갖 생각이 스쳤다. ‘왜 이러지..?’ ‘정말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 ‘그냥 토하고 끝나면 좋겠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 보니 조금은 진정된 것 같아서 일어나 화장실을 나가려고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고 한 발짝쯤 걸었을까? 갑자기 앞이 깜깜하고 의식이 사라졌다. 나의 발은 무의식 중에 거실을 향해 걷고 있었고 그대로 쓰러지며 거실에 놓인 좌식 테이블에 부딪혔다. 여전히 의식은 없었지만, 부딪힌 소리와 감각은 아주 어렴풋이 기억난다. 좌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 소리치는 걸 듣고서야 의식이 돌아왔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할머니는 너무 놀라셨고, 할머니가 집에 오신 뒤 잠에서 깬 동생들이 놀라며 할머니의 말을 따라 119를 불렀다. 그렇게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니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할머니와 함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긴 일.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감성이 마비되고 이성만이 온전했다. 그냥 평소 말하는 것처럼, 타인의 일인 것처럼 구급대원이 물어보는 걸 대답하고 할머니가 괜찮을 거라는 말에 의심하지 않았다. 구급차 안에 누워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아주 잠깐 ‘정말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설마 별일 있겠어..? 괜찮을 거야’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는 구급차. 생각보다 조용했고, 차분했다. 그래서 더 안정되기도 했지만 되려 그 적막감에 보이지 않는 나 자신이 멀어지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갖은 생각과 스스로 위로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해 진찰을 시작했다. 다친 곳이 눈이니까 시력검사 할 때처럼 이마를 대고 관찰하는 기계에 턱을 바치고 있었다. 부딪히고 나서 처음 눈을 뜨는 거였다. 진찰이 끝난 뒤에 다치지 않은 오른쪽 눈만 살짝 떠보니 기계 위에 피가 고인 게 보였다. ‘아.. 심상치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구나’. 그렇게 진찰이 끝나고 다시 나의 세상은 까맣게 변해갔다. 그 사이 전화를 받고 놀란 아빠가 도착했고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평소 해당 병원을 신뢰하고 있지 않던 우리는 안과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으로 갔다. 다른 병원으로 가는 길. 가는 동안 할머니가 엄마와 통화를 했고, 통화 너머로 엄마의 울음소리와 할머니의 울먹임을 듣고 있자니 덩달아 울컥거렸다. 하지만 다친 곳이 눈이라 혹시 눈물이 나면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눈물을 꾹 참았다.


시간의 태엽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감겨갔고,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계속 어지러움을 느낀 나는 휠체어에 앉아 이동했다. 눈을 뜨지 못해 어두워진 세상. 정신없는 소리. 빙글빙글 도는 머리. 그냥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싶었다. 하지만, 이 병원은 안과만 있는데 내가 그냥 다친 게 아니라 어지러워서 쓰러지며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슨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를 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빠르게 다른 병원으로 이동했고, 아빠의 지인을 통해 도착한 병원에서 빠르게 검사를 마치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제정신이 아니었고, 긴장 속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에 일 초라도 빨리 수술을 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이때는 수술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네 시간여 만에 수술이 끝났고, 나의 달라진 시차는 그렇게 자리 잡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