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알기 전에 장애인으로만 인식해버릴까 봐 상대방과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말하지 않았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문장을 쓰고 나니 장애인이라서 차별당한 경험이 있을 것 같지만 없다. 나는 나일뿐인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유사한 상황조차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이런 상황을 피하고자 에너지를 참 많이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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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되고 더 가까워진다고 느껴질 때면 어딘가 불편함이 생기곤 했다. ‘내가 상대방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상대방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껴져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며 울적해졌다.
나로서 인정받고자 선택했던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조여 오는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이 생겨날 때면 확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 장면처럼 어딘가에 가서 소리치고 싶어진다. “그래 나 시각장애인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크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수식하는 여러 단어들 가운데 장애인도 있을 뿐인데. 사고가 난 지 벌써 9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가 보다. 관계가 형성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게 많아지는 것처럼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말하는 것도 그 과정 중 하나의 키워드로 편히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나=가을 좋아함
나= 장녀
나=시각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