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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나 Mar 15. 2022

사회성에 대한 흔한 오해

학교는 친구를 만들러 가는 곳이 아니란다. 

 J, 친구와 관련된 고민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니? 어떤 고민일까? 엄마는 늘 여기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너가 준비된다면, 언제든지 엄마에게 꼭 말해주길 바래. 지금은 너에게 혹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친구에 대해 여태껏 생각해 온 이야기들을 해줄까 해.


주변에 무리를 지어다니는 친구들이 있을거야.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쉴새없이 떠들며 하하호호 하고 있겠지. 그 아이들은 아마 그렇게 여럿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이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고 편할거야.

    

너는 어때? 

    

내가 지금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지켜본 너는 사람들이 적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아. 사람이 많아지면 조금 정신없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바라본 너일 뿐이니, 꼭 너 스스로 한 번 잘 생각해보렴.)


사실 엄마가 그래.


엄마는 1:1로 만나서 생각과 마음을 깊이 나누는 것을 좋아해.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고 나면  정신이 굉장히 충만해지거든.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혼자서 나의 생각과 마음으로 깊이 침잠해 있는 것이란다.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보이면 꺼내어 글로 쓰며 정리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참 좋아.


반대로 여럿이 만나 왁자지껄한 모임에 가면 잠시는 즐겁고 황홀한 느낌이 들기까지 하지만 빠른 속도로 에너지는 소진되고, 돌아오는 길엔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을 많이 느껴. 어렸을 때 부터 네 명 이상 여럿이 만나는 친구 모임이 없다는 것에 약간의 열등의식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단다.


전 1:1의 관계를 선호해요. 사실 혼자 있는 게 가장 편해요.

    


그런데 엄마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학창시절에는 새학기가 될 때마다 이번엔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불안하고, 그게 잘 안 돼서 속상해 하고, 단짝이 없는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어. 어렵게 낀 친구무리에서 멀어질까봐 내 생각이나 감정은 숨기고 그들의 것을 흉내내며 지내기도 했지.


왜 그랬던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고 혼자가 편하다고는 차마 생각할 수 조차 없었던 것 아닐까 싶어. 사회 분위기가 그랬거든.


'사교성'이 곧 '사회성'의 전부라고 잘못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탓에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졸지에 사회성이 없다는 평을 듣곤 했지. 그래서 기를 쓰고 나는 사회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친구를 사귀려 노력했어. 잘 안 되면 주눅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사회성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은 이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니깐 사회적인 사형선고나 다름없게 느껴졌어.


사실 '사교성'은 마치 너의 뛰어난 '언어감각'처럼 타고나는 기질이란다.


언어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쉽게 언어를 배우듯이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은 사람을 쉽게 사귀어. 언어감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좀 더 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듯이,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은 사람을 사귀고 대하는 데에 좀 더 긴 시간과 더 큰 노력이 필요할 뿐이야. 언어감각이 떨어지는 친구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얕잡아 볼 일이 없지. 사교성도 똑같단다. 타고나는 기질에 대해서는 누구도 비난받아선 안 돼. 내 기질을 알고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단다.


반면에 사회성은 기질보다는 소양이지. '사회에서 타인과 공존하기 위해 갖춰야 할 소양'. 소양은 타고나지 않아. 자라면서 배우는 거야. 어린 친구들이 그 소양을 기를 수 있게 가정과 학교에서 오랜 시간 도와줘야 한단다.

    

'사회성'의 핵심인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우선, 다름에 대한 인정이 필요해. 사람마다 같은 것을 보고 떠올리는 감정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음을 마음 깊이 깨달아야 한단다. 그리고 그렇게 둘 줄 알아야 하지. 어떤 비유를 주면 우리 딸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퍼즐 조각]이 떠오른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과 나 모두 다양한 모양의 퍼즐조각이고 어울리면서 서로를 맞대어 보는거지. 그러다보면 맞는 구석이 전혀 없는 조각도 있고, 한 귀퉁이는 맞는데 다른 귀퉁이가 안 맞는 조각도 있고, 딱 맞는 조각이 있을 수도 있고. 딱 맞을 땐 편안함을 느끼고 잘 안 맞을 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나는 대강 내가 어떤 모양의 조각인지도 알게 되겠지. 그게 바로 청소년기에 찾아야 한다는 '자아정체성' 일테고.


우리는 모두 맞는 조각을 찾아 여행을 하는 퍼즐조각들일 뿐이란다. 나와 다르게 생기거나 안 맞는 조각이 나쁜 조각인건 아니야. 그냥 그 조각은 태어나길 그렇게 생겼을 뿐이고, 서로 맞대었을 때 불편함을 느끼는 건 피차 마찬가지이지. 퍼즐을 해봐서 알겠지만 미묘하게 맞지않는 두 조각을 억지로 맞추면 두 조각 모두 상한단다. 내가 다른 사람의 틀 안에 억지로 나를 맞추어서도, 다른 사람을 내 틀에 억지로 맞추려 해서도 안 되는 이유야. 학교는 이렇게 아이들이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며 함께 살아가는 것을 연습하는 공간이 되어야 해.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 둘째는 연대의식이야.


이 우주에, 지구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어떠한 지역에, 한 학교에 모여있다는 사실만으로 '함께' 겪게 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단다. 작게는 학교의 낡은 책걸상을 교체하는 문제부터 크게는 지구의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까지 개인이 해결할 수 없고 뭉쳐서 논의해야 해결되는 문제들이 분명 있단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너와 내가 함께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 연대의식이 필요하고 그 연대의식의 실천을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단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소통을 또 배워야 해.

    

내가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이 편한다 할 지라도,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기꺼이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 그것도 사회성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렵거나 귀찮더라도 "뭐해?" 같은 가벼운 말로 한 번 다가가 보렴. 그들이 너와 동시대를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힘을 합쳐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걸 잊지 말고.




그래서 J야. 학교에서 너무 외로워 할 필요는 없단다. 학교에서 해야할 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거든. 그러니 많이 다가가도 보고 소통도 해보고, 친구가 되지 못하거나 갈등을 풀지 못하더라도, 너는 아직 '타인과의 공존'을 연습 중임을 잊지 말렴.  


결국 인간은 나를 알아주고 지지해 주는 친구가 있어야 채워지는 마음의 구멍이 있긴 하단다. 하지만 친구가 될 인연을 만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고, 친구의 수나 만나는 횟수도 사람마다 달라. 학창시절에 친구가 없다는 것은 그냥 그 시절에 나에게 친구가 될 인연이 찾아오지 않은 것 뿐이란다.


그리고 친구는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그저 결이 맞는 사람을 운 좋게 발견하고 서로 존중하며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교류하다보면 어느 새 친구가 되어있는 거란다. 언젠가 너다움을 깨닫고 너다운 일들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너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으로 향하게 될거야. 네 친구가 될 이는 분명 그곳에 있을 거란다. 엄마가 약속할 수 있어.


조금 빨리 만나고 싶다면, 너가 지금 좋아하는 일, 관심있는 일이 무언지 생각해보고 그 관심사를 나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같이 찾아보자꾸나. 엄마가 도와줄게.


(표지사진 출처: Lienhard.Illustrator/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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