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 시인의 없는 연습
출처
1. 다음 카페, 푸른 시의 방, [시]없는 연습 / 박소란, (https://m.cafe.daum.net/poemory/JW6F/14358)
2. 위키백과, 박소란,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86%8C%EB%9E%80)
없는 연습, 이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연습한다는 것은 더 나아지기 위해 하는 행동인데 앞에 '없는'이란이 붙으니까 이색적이게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무위키에서 '자신의 슬픔을 돌아보고 체념하는 것으로'라는 말이 이 시의 제목이랑도 잘 어울리는 문장 같단 생각이 들었다. 박소란 시인이 1981년 생이란 것을 보면서 생각보다 젊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었다만. 내가 박소란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브런치에서였다. 그때는 너무 건성건성 읽었나 아무런 느낌 없었는데 이번 시 '없는 연습'은 뭔가 떠오르는 이미지가 내게 있었다. 방금 든 생각이 나에게 한 연이 한 개의 장면이고 전체를 이어 붙인 게 하나의 영화 같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시가 좋았다.
총 14연이다. 그래도 꽤 짤막하게 느껴진다. 1연 읽었는데 너무 알 것 같다. 날벌레가 죽었는데 하필 주전자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벌레는 '죽은'이 아니라 '죽어가는'이다. 과연 이 시에서 저 장면은 어떤 쪽으로 해석될까, 잘 짐작되지 않는다. 만약 현실의 나라면 무섭지만 내 손을 거쳐 죽는 게 아니니까 그저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둘 것 같다. 아님 싱크대에 얼른 버리거나.
2연을 보면 화자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나타난다. 물을 끓이려던 중이었다. 하필. 정말 왜 하필 이었을까. 네이버 사전에서 하필이란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이란 뜻이다. 다른 방법도 있는데 왜 꼭 거기 있었냐. 날벌레야. 이 화자도 기다린다고 말한다. '조그맣게 요약될 하나의 죽음을'이라고. 그렇지. 날벌레의 죽음은 아주 사소한 일 중 하나일 것이다.
3연 화자는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상대와 나누고 있다. '어디야? 오고 있어?/ 몇통의 메시지를 보내고'를 통해서 화자는 결혼하고 배우자를 기다리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4연도 읽어보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잔잔하다는 인상을 준다. '읽다 만 책을 들어 천천히 책장을 넘기고/ 어떤 문장에는 일부러 진하게 밑줄을 긋는다'라고. 이렇게 평화롭고 잔잔해 보이는 일상이 5연에서 조금씩 반전된다.
5연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바닥에 켜켜로 내리깔린 침묵,' '그 또한 사랑이었다'라고. 앞의 문장은 한 개의 문장이다. 여기서 보인 단어는 '침묵'일 것이다. 그리고 6연에 이어서 '고요히, 고요히, 그러다 그만 고요가 되어버리기'라고 한다.
6연에서 화자는 주전자 옆에서 무릎을 모으고 앉는다고 한다. 겉으로는 특별히 큰 사건이 없어 보이는데 화자의 내면이 큰 파도가 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난 6연이 정말 마음에 든다. 고요히, 고요히, 그러다 그만 고요가 되어버리기. 건조한 문체 안에 잔잔한 슬픔이 내게 밀려오는 것만 같다.
7연은 뭘까 싶다. '죽음이 오면/ 나는 따뜻하겠지/ 흰 김이 피어오르는 한컵 물을 후후 불어 마시며'라고. 6연에는 1연의 상황이 잘 이어져있다. 화자가 주전자를 끓이려는 상황과 주전자 물에 빠져 죽어가는 날벌레의 상황이 말이다. 근데 죽음이 오면 따뜻하겠지라니. 아직 주전자에 날벌레가 있고 그 애는 주전자 물과 함께 같이 끓는 중일까. 말도 안 되지. 그저 죽음이 오면 '고요해지고' 또 '따뜻해지겠지' 하는 연결법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보면 '흰 김이 피어오르는 한컵 물을 후후 불어 마시며'라는데. 보통 물을 끓이면 차나 커피를 타서 마시는데 순수한 물을 마신다니까. 뭔가 저 화자가 되게 차분한 사람일 것만 같단 생각도 들었다.
8연 읽으면 되게 낭만적인 것 같다. 뜨거운 물을 마시며 '구겨진 사랑을 다시 펼쳐 읽으며'라고 한다. '구겨진 사랑'이란 어떤 책 페이지의 구겨진 사랑일까. 아님 화자의 구겨진 사랑일까. 아무래도 화자는 자신의 지난 삶 지난 사랑을 다시 펼쳐보는 중인 것 같다. 사랑이 언제나 빳빳하게 잘 펴진 신권일 수 없으니까.
9연 보면서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 날벌레의 '죽음'과 이어지긴 한다. 주전자 뚜껑은 뜨겁지 말라고 어떤 처리가 된 모양이다. 그게 꼭 '이제 막 혼을 씻어낸 사람의 차디찬 손' 같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그 손을 잡으면서 화자는 다음 생각에 도달한다. '오지 않는/ 죽음은/ 실은 이미 여러 번 다녀갔는지도 모른다고'라고. 오지 않는 죽음이 뭘까. 9연을 보면서 내가 왜 박소란 시인의 시에 집중을 못했는지 느꼈다. 어떤 죽음일까. 너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에서 늘 끓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차디찬 손처럼 어느 지점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10연 '없는 날개를 연습하듯이/ 또다시/ 또다시'라니. 이번 행에서 느낀 점은 화자가 앞에서 본 날벌레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없는 날개를 연습하듯이'란 말에서 화자는 자신에게 없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계속 애를 쓰는 모습 같다.
11연 '아무 곳으로도 날아가지 않고/ 나는 기다린다'라고 한다. 꼭 결혼하고 집에 매여있는 가정주부가 떠오른다. 괜히 이번 연에서는 나의 엄마가 투영되었던 것 같다.
12연 '날아오지 않는 답장을'은 밖을 헤매는 남편의 마음 아닐까.
13연의 '너'는 화자가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그이에게서 답장이 온다면 너는 마음이 따뜻해지겠지.
14연 화자는 또 상대에게 묻는다. '오고 있어?'라고. 그러다가 '숨을 멈추고, 그러다 그만 무엇을 기다리는지 잊어버리기'라고 한다. 받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자신에게 더 이로운 결정일 수 있다. 앞서 2연에서 '조그맣게 요약될 하나의 죽음'이란 화자가 느끼는 지금 자신의 상황이 아닐까 싶다.
시의 제목 '없는 연습'이란 상대가 없는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 같다. 시의 초반에는 뭔가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가, 시의 후반에 가서는 되게 라이트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가벼움과 무거움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니까, 3연의 '어디야? 오고 있어?/ 몇통의 메시지를 보내고'가 참 애절하게 느껴진다. 몇통이 '어디야?' '오고 있어?'로 그치지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걸로 그쳤을 수도 있고. 난 기다림이 얼마나 피 말리는지 경험해 본 적 있어서 이 시가 잔잔하게 공감된다. 그래, 차라리 없었다면 이 기나긴 기다림도 없었겠지.
왜 하필 주전자 물속에 빠진 거니, 날벌레야. 죽어가는 날벌레도 화자 자신일 것이고, 그걸 바라보는 화자도 화자일 것이다. '죽음이 오면/ 나는 따뜻하겠지'는 더는 발버둥 칠 필요 없으니까 편안하겠지로 들린다. 그와 상반되게 '답장이 오면/ 너는 따뜻하겠지'도 있다. 너의 관심을 받는다면 나는 따뜻해지겠지, 일 것으로 추측된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면서 먹는 독일 빵 '슈톨렌'을 우연히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영영 못 먹는 그림의 떡인 줄 알았는데 우연히 크리스마스 당일 동생의 도움으로 먹게 되었다. 네이버에게 검색하니까 포크는 왼쪽이고 나이프는 오른쪽인데. 난 나이프로 먼저 절단하고, 후에 포크로 집어 먹는다는 생각에 저렇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와인에 먹으면 맛있다는 글을 보고 레드 와인도 그려 넣었다. 난 저 그림을 언젠가 먹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며 밤에 그렸는데, 다음 날 산타 할아버지 같은 동생 덕에 먹게 되었다. 밤새 '없는 연습'을 했는데, 막상 내게 다가오니까 나는 따뜻했었다.
박소란 시인의 '없는 연습'이란 시를 끝까지 읽으니까 2가지가 눈에 밟힌다. 1번은 '죽음이 오면/ 나는 따뜻하겠지'이고, 2번은 '고요히, 고요히, 그러다 그만 고요가 되어버리기'이다. 이 화자는 기대하지 않고 체념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5연에서 '바닥에 켜켜로 내리깔린 침묵, 그 또한 사랑이었다'라고 한다. 난 저 문장이 호밀빵 사이에 어색하게 껴있는 건포도 같단 생각이 든다. 어떤 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난 체념 내지는 반어법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세상이 마냥 하하 호호할 수 없으니까.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화자는 '오고 있어?'라는 마지막 끈을 놓지 못한다. 그게 사람 아닐까 싶다. 없는 연습을 해도 그게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지만 없는 것. 그럴 때 사람은 더 비참함을 느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