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빛깔이 나에게 묻다

진은영 시인의 자기소개

by 시적

출처

1. 다음 카페, 푸른 시의 방, 진은영 시인의 자기소개, (https://m.cafe.daum.net/poemory/JW6F/14327?)

2. 마리끌레르, “이 언어는 여성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글 쓰는 여자들 #2, (https://www.marieclairekorea.com/culture/2025/03/clarice-lispector-2/?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


물들다, 빛깔이 스미거나 옮겨 묻다.


자기소개라는 말이 주는 단단한 어감이 좋다.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사실 자화상이 먼저 떠올랐다. 왜냐하면 자신을 소개하는 그림이 자화상이니까. 그리고 1연을 보니까 화자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이 자라서 할머니에게 깊이 물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제목이 단출하게 <물들다>이다. 다른 수식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다음 시를 쭉 그냥 보았다. 길더라. 전에 고른 시도 길어서 이번 시는 짧은 거 어떨까 했다. 근데 너무 짧으면 내가 매력을 못 느끼더라. 그러던 중 진은영 시인의 자기소개란 시는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쭉 이어지는 어떤 스토리가 느껴져서 짧고 빠르게 쓸 수 있지 않나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


그리고 저 낙서를 고른 이유도 별 거 없다. 의자들이 놓여 있고 커피들이 나란히 있는 평화로움을 사랑한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카페에 물들었다. 물들다 하니까 그게 떠올랐다. 부디 이번 시는 후루룩 쓸 수 있기를.


가장 먼저 네이버 사전에 '자기소개'를 검색해 보았다. 붙여 쓰는 게 원칙이었구나, 새삼 배우는 시간이었다. 일단 '자기소개'라는 저 4글자를 보고 있음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사원증 비슷한 게 떠오른다. 그리고 되게 간결하면서도 단단한 느낌도 들고 그래서 제목부터 어감이 좋았다. 자신의 이름과 직업 또는 경력을 소개하는 익숙한 말인데도 묘하게 낯설게 다가와서 신기했다.


이번 시는 총 7연이구나. 시를 읽기 전 나는 7개의 사진을 볼 것 같은 설렘이 들었다. 1연 1행부터 너무 좋은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할머니와 살았고 어릴 적부터 늙어 있었어'란 말이 할머니와 살아서 애어른이란 말을 자주 들었단 것 같다. 단순하지만 묘하게 잘 얽혀있는 실타래 같은 문장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도 만만치 않게 빛난다. '5월까지 해어진 빨간 내복을 입고 다녔거든요' '슬픔이 나의 명랑한 이목구비를 깨끗이 닦아줬어요' '할머니의 술병들이 자라고 아버지의 빛도 자라고 부서진 세간들도 자라고 나도 자랐어요.'*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단편 「사랑」에 나오는 한 문장을 변주함.


네이버에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검색하니까 아주 섹시한 여자가 나온다. 배우 최명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저자다. 그 저자를 다룬 글이 마리끌레르 잡지에 게재되어 있다. 그 글을 읽으니까 내가 알던 진은영 시인의 스타일이랑 비슷한 것도 같다. 그건 그렇고, 저 저자의 주제는 '여성 해방'인데 그것이 '자기소개'란 시의 밑바닥에 잘 깔려있는 듯했다.


다시 1연이 좋았던 이유로 돌아가겠다. 1연 1행, 할머니와 살아서 어릴 적부터 늙어 있었다는 담백한 표현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울리는 1연 2행 '빨간 내복' 등장이 좋았다. 거기에 5월까지 해어진 빨간 내복을 입는 화자의 나이가 어리겠구나 짐작도 되었다. 이어서 1연 3행 '슬픔이 나의 명랑한 이목구비를 깨끗이 닦아줬어요'는 표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일단 '슬픔'은 할머니가 손주를 바라보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어미 아비와 떨어져 사는 와중에도 손주는 명랑하게 잘 자라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1연 4행에서 화자가 자라는 것을 3단계로 보여줬다. '할머니의 술병들이 자라고' '아버지의 빛도 자라고 부서진 세간들도 자라고' '나도 자랐어요.'라고. 여기서 가장 감탄한 부분은 '아버지의 빚'일 게 분명한 구간을 '아버지의 빛'이라고 한 점이다. 할머니의 술병이나 부서진 세간들을 본다면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그 사이에 살포시 '빛'이란 말을 숨겨놨다. 위에서 보면 '어릴 적부터 늙어 있었어' 다음에 오는 말이 봄을 상징하는 '5월'이다. 이렇게 슬픔과 기쁨을 퐁당퐁당 오가는 시라 너무 좋다.


확실하게 이 시는 1연부터 색깔이 보인다. '5월' '빨간 내복' '슬픔' '명랑한 이목구비' '아버지의 빛' 여기서 보이는 색은 '노랑' '빨강' '파랑' '하양'이다. 구체적인 이미지들로 내게 한 편의 이미지를 1연에서 완성했다. 그다음으로 보이는 특징은 어려운 말이 없다는 점이다. 그게 아주 만족스러웠다.


1연을 보면 화자가 누구와 살고, 어떻게 살았는지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2연에서는 어린 화자가 '키 큰 소녀가 되었어요'라고 하며 시작한다. 2연 2행 보면 1행과 맞닿아있단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키가 자랐지만 아직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마음을 지녔다로 읽혔다. 길지만 되게 아름답게 잘 읽힌다. '어둠 속 커다란 침대에 혼자 누워서 사랑이 빛처럼 내 방 문틈으로 기어들기를 기다렸어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빛'이다. 한창 부모님의 애정을 갈구할 나이지만 보답받을 수 애정에 혼자 굶주려있는 키 큰 소녀의 외로움이 저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느껴졌다.


2연 3행에 나온 '프루스트'는 인간의 내면 의식 흐름을 탐구한 프랑스 소설가라고, 네이버 사전이 압축적으로 내게 알려줬다. 그런 작가 이름 뒤에 바로 붙은 '거짓말'이란 단어가 되게 슬프게 들렸다. 아마도 앞에 깔려있는 이미지들과 맞물려서 그러지 않을까. 사전적 정의로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게 어쩌면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명랑하지 않은데 명랑한 척하는 화자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닐까 싶다. 2연 4행 보면 어떤 의미로 되게 숨 막히는 상황이다. 혼자 쓰는 방은 없고, 동생은 셋이나 있는 장녀라니. 화자는 어린 나이부터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 마음이 2연 5-6행에 드러난다. '가게 간판 불빛으로 환한 창문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밤이슬처럼 증발하기를 꿈꿨어요'라고. 저기서 '뚫어지게 노려보며'는 화자 안에 내재된 공격적인 마음 같은데 그마저도 '불빛'으로 치환되어 있다. 그 뒤에 이어져 나오는 '밤이슬처럼 증발하기를 꿈꿨어요'는 자신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잘 투영된 것 같다.


2연에서 느낀 점은 '하양'과 '검정'의 선명한 대비다. '어둠 속 커다란 침대'와 '밤이슬'이란 단어가 닮은 듯 다른 것 같다. 까맣다는 점이 닮고, 하나는 형체가 무겁고 다른 하나는 형체가 가냘프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이란 영화를 안다. 인간의 기억을 소재로 한 꿈과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래서 '푸르스트'와 '꿈꿨어요'린 말이 잘 어울린 것 같다. 그리고 2연을 다 읽고 나니까 '키 큰 소녀'는 속 빈 강정처럼 느껴진다.


3연쯤 되니까 집중력이 고갈되었다. 다음 이 시간에. 내가 아는 시 중에서 기형도 시인의 대학시절, 박연준 시인의 얼음을 주세요가 떠올랐다. 기형도 시인의 시는 내용을 보고, 박연준 시인의 시는 시의 말투를 보고.


괜히 3연을 보고 기형도 시인의 대학시절을 떠올린 게 아니다. '대학에 들어갔어요 죽은 사람들이 많았어요'라는 3연의 1행만 봐도 그 시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진은영 시인은 1970년대 생이고, 그녀와 나이가 비슷한 엄마는 티비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여기서도 상반된 분위기가 동시에 공존한다. 3연의 2행 '배꽃나무가 문상객처럼 문상객처럼 이어지는 언덕길을 설레며 걸었어요'는 단순히 보면 배꽃나무가 활짝 핀 화사한 언덕길을 설레며 걸었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문장 안에 '문상객'이란 단어가 들어가면서 좀 더 의미심장해진다. 내가 3연에서 느낀 것은 개인적인 슬픔에서 사회적인 슬픔으로 확장된 것이다. '익사체로 발견된 청년 편집장의 얼굴'이란 표현 해서 말이다. 그리고 3연 2행과 4행에서 느낀 것은 사회가 슬픔을 느끼고 있을 때 화자는 그 슬픔을 모르고 '설레며 걸었어요' 혹은 '우리는 웃었는데'하는 상황인 것 같다. 앞에 '죽은 사람들이 많았어요'도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덩그러니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하는 느낌이다.


3연을 보면서 가장 감탄이 갔던 구절은 3연 4행이다. 바람이 부는 것을 비질할 때마다라고 하는 것이 좋았다. 바람이 빗자루처럼 쓸어주는 언덕길. 꽃들에게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 것도 그것이 먼지처럼 일어난다며 그 슬픔이 먼지조각처럼 쓸모가 없는 것처럼 비치는 것도. 그럼과 동시에 이 모든 과정이 처절하게 느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았다. 곱씹을수록 평범한 듯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었다.


3연 대학시절을 지나 4연 화자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나는 따뜻하게 느꼈고 당신은 차갑다고 느꼈습니다.'였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 누군가는 따뜻하다 느끼며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는 차갑다고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데이트 중인데 눈보라가 불었던 모양이다. 4연 3-4행 '눈보라가 이불, 이불, 살아 있는 이불들처럼 우리를 따라왔어요 하얗게 덮어줬어요./ 잠시 세상에서 우리를 지워줬어요.'가 미치도록 좋았다. 눈보라는 차가운 성격인데, 이불처럼 우리를 덮어주고 잠시 세상의 눈을 피해 지워줬다는 게 따뜻한 성격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괜히 눈물 나게 고마운 그런 기분이다.


여기서 보이는 '잠시 세상에서 우리를 지워줬어요'는 2연에서 보인 '밤이슬처럼 증발하기를 꿈꿨어요'와 유사한 것 같다. 그리고 5연에서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면 죽은 척했어요'와 6연에서 '살아 있는 척했어요/ 살아 있는 척했어요'와 유사하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외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유년시절에서도, 성인이 되어서 사랑을 할 때도,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도 변하지 않는 거짓말처럼 화자를 쫓아왔다.


5연 보면 '자기소개'라는 시는 정말 화자의 일대기구나 싶다. 어린 시절도 보여주고, 대학시절도 보여주고, 사랑도 이별도 모두 보여주니까. 5연 2행 "혼자일 땐 늘 과음을 하고 과로를 하죠"라는 누군가의 말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화자. 아무래도 화자가 이별에 대처하는 방식인가 보다. 모두의 이별 방식일 것 같아 난 무척 공감이 갔다. 그런 와중에 5연 3행 보면 화자는 자신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피력하지 못하고 보여 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는 것 같다. 2연 '프루스트를 읽고 하게 된 거짓말'이란 말과 이어지는 대목 같다. 5연 4행 보면 화자는 살아 있지만 죽은 척했다고 한다.


6연에서는 그런 말이 손쉽게 뒤집힌다. 아무래도 화자의 감정은 양극단에 있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어서 죽은 척도 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보이고 싶어서 최대한 살아 있는 척도 해본 것이다. 이 시에서 '이불, 이불, 살아 있는 이불들처럼'과 '살아 있는 척했어요/ 살아 있는 척했어요'가 2번씩 반복된다. 화자가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붙잡고 싶었던 가치가 '살아 있음'이 아닐까. 되게 간절해 보인다. 6연 3-4행을 보면 3연에 나온 대학시절 죽은 친구가 화자의 영혼 속에 남아있는 게 아닐까, 구석에서 말라가며 쉰 냄새를 풍기는 걸레처럼. 이런 표현 참 좋은 것 같다. 현실적이면서 구체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 표현 말이다. '구석에서 말라가며 쉰 냄새를 풍기는 걸레처럼'에서 보인 이미지는 2개다. '구석에서 말라가며'와 '쉰 냄새를 풍기는'에서 시각과 후각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고 과거 대학교 돌계단 아래 비 온 뒤 떼죽음 당한 지렁이 떼들이 떠오른다. 죽음은 참 잊기 힘든 형태와 냄새로 남아있는 사람을 옥죄는 것 같다.


아, 드디어 마지막 연이다. 7연. 이쯤 읽으니까 2연 빼고 모두 4줄로 이루어진 연들이다. 그렇다면 2연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면 키는 큰 소녀지만 마음은 덜 자란 소녀 혹은 자아만 비대하게 자란 어린 소녀 아닐까. 괜히 다른 연에 비해 몸집이 커 보여서.


아무튼 7연 마지막에서는 앞서 나온 무력감과는 다른 결말이었다. 7연 4행을 보면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물방울들이 겨울날의 미친 분수대처럼 구멍에서 일제히 솟아올랐어요'라고 한다. 보면 볼수록 황홀한 표현이다. 일단 서술어 부분 '구멍에서 일제히 솟아올랐어요'에서 어디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솟구친다는 점에서 더 능동적인 움직임 같았다. 그렇지만 앞에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물방울들이'란 지금껏 수면 아래 묻힌 죽음들을 이야기할 것이고, '겨울날의 미친 분수대처럼'이란 것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솟구친 게 아니라 참다못해 역류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앞의 서술을 보면 절대 긍정적일 수 없지만 마지막 부분 '일제히 솟아올랐어요'를 믿고 싶어졌다.


7연 1행 '그때 노래가'는 아무래도 6연 '내 영혼 속에 죽은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일 것 같다. 그 노래는 죽지도 않고 '절망의 맨홀 뚜껑을 열고/ 아래로, 배관공처럼 내려왔어요'라고 한다. 그 노래와 '함께 내려온 빛의 사다리를 따라 무의미의 날벌레들이 잠시 흩어졌어요'라고 한다. 1연의 아버지의 빛, 2연에서 '사랑이 빛처럼 내 방 문틈으로 기어들기를 기다렸어요', 7연에서 '함께 내려온 빛의 사다리' 곳곳에서 '빛'이 등장한다. 1연 아버지의 빛은 어린 시절 '빚'이란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들리는 대로 '빛'이라 착각한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시절 아버지는 커 보였을 테고 또 어린 화자가 애정을 갈구하는 대상이니까 빛이란 말이 어울리기도 하다. 그리고 2연에서 '빛'은 성스러운 느낌보다 '방 문틈으로 기어들어오는 대상'이다. 저 '빛'에도 은연중에 빚더미에 앉아 도망 다니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깔려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마지막 7연에 나온 '빛'은 '연대의 빛'이다. 3연에 나온 '배꽃나무가 문상객처럼 이어지는 언덕길' 혹은 '바람이 비질할 때마다 꽃들에게서 울음소리'와 유사한 성질처럼 느껴졌다.


7연 3행 '무의미의 날벌레들이 잠시 흩어졌어요'라고 말한다. 3연에 나온 '꽃들에게서 울음소리가 먼지처럼 일어났어요'와 비슷해 보인다. 그렇지만 3연에서 꽃들의 울음소리는 소리 없는 침묵으로 비참하게 느껴졌다면, 7연에서 무의미의 날벌레들이 흩어지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살아있는 날갯짓으로 들렸다. 괜히 '빛의 사다리'를 보니까 어디서 무지개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 날벌레들이 '익사체로 발견된 청년 편집장의 얼굴' 주변을 서성이며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내가 이렇게 '자기소개'란 시를 끝까지 다 읽으니까 느낀 점은 '왜 내가 진은영 시인을 좋아한다고 믿었는지 알 것 같다.'였다. 어렵기도 한 시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은유들이 무더기로 있는 시인이다. 1-2연 미친 듯이 설레면서 읽었고, 3연을 넘길 즈음 쭉 보니까 비슷비슷한 재질의 표현들 아닌가 싶다가, 마지막까지 다 읽었을 때는 비슷한 재질의 표현 속에서 조금씩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구나를 느꼈다. 어쩐지 내게 '자기소개'란 시는 되게 영화 같은 시였다. 이미지와 표현과 감정 모두 다 무게를 잘 잡은 영화. 그리고 전체 분위기가 '명랑한 슬픔'이 아닐까 싶다. 처절한 슬픔이 느껴지는 와중에 찬란함을 끝까지 잃지 않는 그런 시 말이다.


아무래도 커피에 대한 나의 가벼운 애정과 이 시를 양립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연 어떤 이미지를 써야 잘 어울릴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슬픔을 마주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되게 어려워진다. 그래서 골랐다. 배경은 내가 좋아하는 밝은 파스텔 톤인데, 인물은 칙칙한 까망인 것으로. 저 낙서를 하고서 왜 저렇게 가에 서있을까 싶었는데, 오늘을 위해 저기 서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주로 뒷배경에 뭔가 아지랑이 피는 듯한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는데 그게 마지막 연과도 어울리는 것 같다.


제목은 '물들다'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서 차용해서 썼다. 화자의 슬픔이 아닌 타자의 슬픔이 화자에게 물든 것 같은 이미지가 3연을 넘어서 짙게 나타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시 어디에도 '물들다'가 없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1연 1행 할머니의 삶에 물들어서 자신도 늙었다는 화자의 표현을 보고 떠올린 모양이다. 참 신기하네.


이번 '자기소개'란 시에서는 '좋았다'란 말을 차고 넘치게 썼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썼는데 이번이야 말로 진짜 편하게 막 썼다. 뭐, 늘 편하게 막 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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