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사랑을 그리며

정윤천 시인의 마흔 살의 하루라는 이름의 역 앞에서

by 시적

출처

1. 네이버 블로그, 웹진 시인광장,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500 【358】 마흔 살의 하루라는 이름의 역 앞에서 - 정윤천 시인 ■ 2025년 7월 27일 e-메일, (https://blog.naver.com/w_wonho/223950453406?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마흔 살의 하루라는 이름의 역 앞에서'라는 시에 대한 내 첫인상은 제목도 길더니 시 내용도 길다였다. -같았습니다 혹은 -있었던가요 라는 말의 어미에서 부드럽고 잔잔한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내용이 머릿속에 바로 강렬하게 전달되기보다 천천히 음미해야 맛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취향은 아니다 싶다가도 어쩐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처음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란 노래가 떠올랐다. 그때의 서른이 지금의 마흔과 같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때 결혼 적령기와 지금 결혼 적령기가 다르니까. 요즘은 스무 살에서 서른은 아무 느낌 없이 넘기는데 또 서른에서 마흔은 다르게 여겨지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에서부터 난 끌렸었다.


요새 시인은 잘 안 찾아보고, 시 내용만 보는데 여기 시인 사진도 있고 199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했다는 사실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머리카락이 길고, 까만 뿔테 안경에, 잔잔한 웃음을 띠고 있는 게 시랑 참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르는 이미지 같다.


이제 찬찬이 1을 살펴봐야겠다. 1만 있는 게 아니라 2,3,4도 있으니까 갈길이 멀다. 1의 1행이 참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것 같다. '당신을 태운 기차를 보내고 온 감정의 선線 하나를 여기에 잠시 내려놓아 봅니다.'라고 한다. 친절하게 한자어 옆에 한자를 적어줬다. 어떤 한자인지 헷갈릴 일도 없겠다. 정황상 지금 당신을 보낸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낸 그때를 회상하는 것 같다. '기억의 건반' '풍금 소리의 시간' '기차도 강물처럼 흘러갔을 것'이란 표현들이 사람 마음을 몽글몽글해지게 하는 것 같다.


1의 2행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 시는 자세히 뜯어봐야 진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구나였다. 완미完美란 음식을 씹어 잘 맛봄과 시문 따위의 뜻을 잘 음미하며 생각함이라 한다. 완미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하니까 부드럽고 아름다움도 있던데 확실히 한자가 적혀 있어서 의미를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편의 그림처럼 '강물이 끝나는 마을의 언덕'에 '서있던 은행나무의 풍경' 눈앞에 그려진다. 여기서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시적으로 승화시킨 것은 저 '완미'라는 단어와 '요약'이란 말 덕분 같다.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자는 더 깊이 음미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한 줄 한 줄 하다 보면 어느 세월에 마지막 연에 도착할 수 있을까. 꼭 무궁화호 기차 타고 서울 가는 것 같다. 답답하지만 누려야지. 이미 탑승한 거 뭐 별 수 있나. 1의 3행 꽤 길다. 보니까 화자는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간 모양이다. 여기서도 시인의 표현이 아주 빛난다. '편지를 부치러 갔던 우체국 지붕에 내려앉은 고요' '침을 발라 붙여 준 우표 한 장' '종소리가 들려오던 교호의 길목' 이런 이미지의 나열이 이미지를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해주는 것 같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한석규처럼 순박하고 사랑에 푹 빠진 청년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래서 1의 4행의 말이 곧바로 이해가 됐다. '순간이라는 순간 앞에서 잠시 정지해 본 적이 있었던가요.'라고 하는데 정말 멋진 표현이라 생각했다. 이미 순간이지만 그것보다 더 짧게 느껴지는 찰나의 시간이 있다. 사랑에 빠져서 느꼈던 강렬한 기쁨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기쁨을 느낀 순간 화자는 이대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난 저 한 줄에서 2가지의 순간을 떠올린 것 같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1의 5행에서 화자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마흔'을 정의 내렸다. 이 또한 마음을 울린다. 마흔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면 거기 '마음'과 '흔적'이라는 의미가 왜 그렇게도 겹친 채로 마주 보고 있었던가요,라고 한다. 마흔은 누구나 지나오고 또 나이와 숫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동시에 살아온 기록이며 온 마음을 다했던 과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에서처럼 겹친 채로 그렇게도 마주 보고 있는 거 아닌가. 사랑했던 마음과 그것이 떠나간 흔적을 살피는 것. 마흔을 마음의 흔적이라니, 이 시는 딱딱하고 무겁게 느껴지던 마흔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탈피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리 나는 대로 또 떠오르는 대로 정의 내릴 수 있는 순수한 나이라고 말이다.


1의 6행 보니 '마음의 흔적' 하나가 느껴졌던 게 오래전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3개의 이미지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의 아침' '깊은 휴지의 시간 속에서 깨어난 듯' '몽롱해진 상태'가 내 눈에 들어왔다. 휴지休止는 하던 것을 멈추고 쉼이다. 이것 보고 떠오른 게 빵 반죽 할 때 부풀라고 휴지 하는 게 떠올랐다. 이번 6행을 읽고 든 생각은 시 전체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나는 시 속의 화자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감정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희로애락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 같다. 그래서 '마음의 흔적'이란 게 과거에 어떤 사랑했던 사람이고, 그 사람을 잃고 보내온 시간 속에서 이제야 잠에서 깼다는 말처럼 들린다.


사실 이렇게 잔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또 있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는 듯한 말투도 한몫하지만 -하였겠지요나 -같았습니다 같은 말이 확언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부정확하게 흘리는 말투다. 그리고 전체적인 인상이 또렷한 인상화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빛의 파장을 그린 인상파 그림 같다. '마음의 흔적' 또는 '기억의 그네' 이런 말들이 추상적인 표현들이니까.


1의 7행 보면 추상의 절정 같다. '가버린 것들의 그림자'와 '오지 않은 미지의 새 얼굴'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마흔 살의 하루'라는 다소 긴 이름의 역 하나를 세워놓게 된 모양이다. 보면 여기서도 화자는 당신에게 '하였던가요'라며 '하였다'가 아니라 묻는 방식으로 어미를 끝내버린다. 이제 이 시의 화자의 정서가 느껴진다. 바로 '몽롱하다'이다. 자신이 어떤 감정인지 명확하지 않고 다소 두루뭉술하게 또는 붕 뜬 그런 감정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그네 위로 잠시 걸터앉아 보았습니다'도 '과거를 회상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게 화자가 낭만적인 감정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1의 8행 보면 화자는 자신을 '누추한 표정의 승객'일 것이라며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보면 '마흔 살의 하루'의 첫날은 아주 강렬할 것 같다. 그래서 그날의 끝도 의미가 남다를 것으로 여겨진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누추한 표정'과 성질이 조급한 '성마른 기적소리'는 정말 만나면 안 될 것 같은 두 개가 만난 기분이다. 그렇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찌질한 모습을 화자를 통해 난 성급하고 못났던 지난날이 떠오르기도 했다.


1의 9행은 기차가 달려온 길을 화자가 회상하고 있다. '오래된 들판을 지나고 수수밭의 언덕에서는 힘이 들어 보이기도 하다가, 약국 앞이거나 해장국 같은 착한 모국어의 간판들 곁을 스쳐 가기도 하였겠지요'라고 한다. 난 여기서 약국이나 해장국을 착한 모국어의 간판이라고 한 점이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약국과 해장국의 공통점은 사람을 치유한다는 점이다. 약국처럼 직접적으로 치유하거나 혹은 해장국처럼 간접적으로 치유하거나. 그리고 오래된 들판이니 또 수수밭 언덕에서는 힘이 들어 보이기도 했다는 말을 보면 화자가 되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1의 10행. 드디어 1의 마지막 행이다. 여기서는 이런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을 처음 본 장소에서 매만졌던 나뭇잎들 같은 마흔 편쯤의 시들을, 다시 한번 바람 속으로 흔들려보게 하고 싶었답니다'가 보였다. 당신을 처음 본 장소에서 매만졌던 나뭇잎들 같은 마흔 편쯤의 시들. 그만큼 화자에게 당신과의 첫 만남이 강렬했다는 것 같다. 동시에 이별 후 화자는 그 순간을 되돌려보며 마흔 편쯤의 시들을 탄생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바람 속으로 흔들려보게 하고 싶었다는 화자의 마음이 '다시 한번 당신을 만나고 싶다'로도 들린다. 참 낭만적이다.


드디어 1이 끝났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2,3,4가 남았다. 내게 이 시는 즐즐이 이어져 있는 알사탕이며 동시에 기차 칸이다. 더 볼 풍경이 남아있음에 감사해야겠다. 이게 바로 정신 승리 아닐까 싶다.


내 기억으로 2는 되게 짧았다. 희망이 보인다. 2의 1행과 2행은 화자가 당신에게 느꼈던 감정을 이미지화한 것이고, 3행은 화자의 못다 한 희망사항이 보인다. '해바라기의 언덕 위로 밀잠자리의 느린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도착하는 서정抒情을 지켜봅니다'라고 한다. 앞에서도 은행나무가 보이더니 여기서 해바라기와 밀잠자리가 보여서 시 곳곳에 가을의 따뜻한 정서가 발견되는 것 같다. 뒤에 보니까 '커피 포트' '벙커' '모래' '뜨거운 햇볕' '엽서' '낙엽' 이런 시어들이 빛바랜 시간들의 색을 잘 가져와주는 것 같다.


2의 1행에서 '근경近境이었기를 소원하여 보았습니다.'와 2행 '하급반 아이들의 걸음처럼 느리게 뒤따라왔던 별들의 시간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싶었습니다'가 화자가 당신에게 미처 하지 못한 고백처럼 들린다. 3행 '처음부터 내 것이었을지 모를 소나기구름 몇 장을 부쳐보고 싶었더랍니다'까지. 근경이기를 소원했다는 가까이에 있고 싶다로 들리고, 별들의 시간을 고개 들어 바라보고 싶었다는 당신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당신이라는 호칭 하나가 갑자기 아득해져서 소나기구름 몇 장을 부쳐보고 싶다는 당신을 잃은 내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로 들린다. 1에서는 잘 안 느껴지던 화자의 심정이 2에서는 아주 절절하게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해바라기의 언덕 위로 밀잠자리의 느린 편대가 저공비행으로 도착하는 서정을 지켜봅니다'와 '하급반 아이들의 걸음처럼 느리게 뒤따라왔던 별들의 시간'이란 표현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2가 끝났다. 과연 3은 1만큼은 안 되지만 그에 비등하게 길다. 그리고 4는 3보단 적다. 이런 구성을 보니까 조삼모사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2가 짧다고 기뻐하던 나를 보니까 말이다. 또 생각해 보면 이 시의 구성 1,2,3,4가 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길이가 제각각인 4개의 선이 적재적소 하게 잘 배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디어 3인가. 3의 1행을 보니까 언젠가 당신이 내게 사막 이야기를 해준 모양이다. 유전油田은 석유가 나는 곳이고, 전언傳言은 누군가의 말을 전함 또는 그 말이라고 한다. 유랑자도 아니고 '한 유랑의 발걸음에 관한 전언'이라니.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랑의 발걸음이 전하는 말은 어떤 말일까. 어떤 말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목이 타는 간절함이지 않았을까 싶다.


3의 2행은 그런 사막의 뜨거움을 현대적으로 커피포트의 열로 이어나간다. 이번 문장만 보면 되게 낭만적이고 공감 가는 구간이다. 눈을 뜨면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고, 스테레오의 볼륨을 커다랗게 높이고. 커피와 음악이 함께하는 아침. 3의 1행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근데 3의 3행을 보면 그런 물과 기름 같은 이야기를 적절하게 섞으려고 한 것 같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벙커와 같은 사막의 야영지'와 '그가 혼자만의 제의처럼 맞이했을 한잔의 커피'는 그 옛날 석유를 찾아 떠돌던 사람과 오늘날 현대적 아침을 맞이하는 화자와의 간극을 좁혀주고 있다. 이번 행을 읽으면서 2행이 마냥 평화롭게 느껴지지 않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노력도 없이 찾아와 주었던 우리들 일상의 안락들이 얼마나 커다란 행운일 수 있었던가요'라는 말에서 오늘날 우리가 석유를 사용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것일까. 아님 화자에게 대가 없이 찾아온 사랑에 대한 감사였을까.


3의 4행을 보면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진 숱한 시구詩句들'은 화자가 만난 사람들일 것이고, 그런 만남의 과정에서 '누군가가 처해있는 위도緯度에 관해서도 헤아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은 화자 자신에 대해 좀 더 알 기회가 되었다는 것 아닐까. 위도緯度는 지구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축 중 가로를 말한다.


3의 5행에서 '연서의 혐의'라는 말이 재밌었다. 남녀 사이에 주고받은 연애편지 '연서' 뒤에 마치 범죄의 가능성인 '혐의'가 붙는 게 언발란스하면서도 매력적인 표현으로 느껴졌다. '한 번쯤 붉어졌을지 모를 당신 표정의 한순간이 궁금해지기도 하였는데'라는 말과 '그만 질투의 마음이 일어날 것도 같았던 모래의 페이지 한 장을 서둘러 넘겨버리기도 하였더랍니다'라는 말이 사람 마음을 참 몽글몽글해지게 한다. 따뜻하고 찬란했던 시절을 화자는 회상 중인 것 같다.


3의 6행 보면서 조금 어렵단 생각도 들었다. '황량한 호흡의 걸음으로 걷고 있을 뜨거운 햇볕'은 아무래도 과거에 만난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다. 저기 보면 '황량하다'와 '뜨겁다'가 같이 있는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 사람을 향해 자신의 그리움과 못난 마음을 날려 보내기도 했단 것을 '습기와 곰팡이'로 적은 게 아닐까. 그런 '쑥스러운 고백을 이제야 전하기로 합니다.'라는 그 문장 하나가 내게 굉장히 어여쁘게 다가왔다.


드디어 4다. 난 영화를 봐도, 연극을 봐도 이게 언제 끝날까 늘 학수고대한다. 그게 재미있든 재미가 없든 똑같다. 그냥 궁금하달까. 4의 1행도 앞서 나왔던 문장들처럼 따뜻하고 무척 길다. '시에게 돌아가야 할 이 세상의 모든 시의 시간들이' '각각의 표정으로 태어나고 저무는 순간들을 향해' '마음을 모아 보려고 합니다' 영어 구문 읽듯이 끊어 읽어야 할 문장이었다. 그랬더니 주어를 찾았다. 이 세상의 모든 시의 시간들이다. 앞에 '시구'가 나왔고 그들의 집이 아무래도 '시'인가 보다. 어쩌면 주어는 생략된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화자가 시가 태어나고 저무는 순간들을 향해 마음을 모으는 것 같다. 이번 행에서 느낀 점은 화자가 세상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어떤 연민이다. 불특정 다수라기보다 화자 자신과 같은 사람에 대한 연민일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


4의 2행에서는 화자가 당신에게 "바다로 가는 자전거"란 시를 읽어준 것 같다. 3행에서 바로 그 시의 구절이 나온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갈림길에서 헤어져야 할 때 자전거는 해가 지기 전까지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살고 있는 마을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누군가를 향해 정해진 시간까지 가야 하는 자전거라니. 그리고 그런 모습을 '늦어서는 안 되는 깊은 사랑의 약속이 하나'라고 바라보다니. 여기서 '바다로 가는 자전거'를 바라보는 사람이 화자 같다. 화자가 사랑을 잃고 쓸쓸한데, 그 사랑이 누군가를 향해 돌아가는 모습까지 봐야 하는 쓸쓸함이 느껴졌다.


4의 3행 화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흔 살의 하루'라는 이름의 역 앞으로, 은빛 바퀴의 뒷모습을 흘리며 달려가 보고 싶었다고. '은빛 바퀴의 뒷모습을 흘리며'란 구절에서 반짝이고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보아서 굉장히 좋았다. 이 말은 떠나는 사람을 붙잡고 싶었단 걸까, 아님 그 사람처럼 누군가를 향해 열렬하게 달려가고 싶었단 말일까. '마흔 살의 하루'라는 이름의 역 앞으로 달려간다는 것을 보면, 그동안 만나고 헤어진 모든 구절을 다 포용하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그 모든 순간이 자신이었고 의미 있었다고 말이다.


4의 4행은 그렇게 온 시간을 받쳐 사랑을 지나온 자신을 '오래된 계절 위에서의 밀잠자리 한 마리 마냥 조금은 한가해져 버리거나 쓸쓸해져 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라고 표현한 것 같다. 4의 5행은 '맨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해저海底의 목소리들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인양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군요'라고 말한다. 오래 묵혀둔 화자의 속마음을 너무 많이 말한 게 아닌가 하며 쑥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4의 6행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당신의 발소리 쪽을 향하여 눈을 들어 바라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직도 당신의 자취가 화자에게 생생하다는 표현 같다.


4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감이 3행 5행 6행으로 표현된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의 발소리 쪽을 향하여 눈을 들어 바라보고 싶었습니다'가 내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2의 2행에서도 '별들의 시간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냥 화자는 당신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미 떠나간 시간이지만 아직 생생하게 남은 그 시간들 어딘가를 화자는 유영하는 것 같다.


드디어 끝이다. 사실 소설보다는 짧겠지만 그래도 내게는 길다. 그래도 심보선 시인의 '마치 혀가 없는 것처럼'이나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보다는 짧은 것 같다. 내게 '마흔 살의 하루라는 이름의 역 앞에서'라는 시는 여러 편의 수채화를 본 것만 같았다. 아주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멋진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전현무가 한 말이다. 마흔이라고 크게 변화가 있을 것 같았지만 똑같았다고. 내게 서른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로 각인된 것처럼 마흔은 그 사람의 말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쉰은 최근 한고은 배우가 쉰이란 것과 유튜브에서 메뉴판 글씨가 잘 안 보여서 멀찍이 떨어지는 이미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서른도 마흔도 쉰도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지만 이 시의 제목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의 역임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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