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연지 시인의 발룻
출처
1. 다음 카페, 푸른 시의 방, 2016 가을, 제25회 <시로 여는 세상> 신인상 당선작- 프로페셔널(외 4편)/ 권현지, (https://cafe.daum.net/poemory/H3jb/1715)
2. 오마이뉴스, 보신탕과 발룻은 민족 고유의 맛일 뿐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57010)
3. 나무위키, 피의 구원 사원, (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C%9D%98_%EA%B5%AC%EC%9B%90_%EC%82%AC%EC%9B%90)
4. 나무위키, 러시아 알렉산더 2세 암살, (https://en.wikipedia.org/wiki/Assassination_of_Alexander_II_of_Russia)
5. 나무위키, 알렉산드로 2세, (https://ko.wikipedia.org/wiki/%EC%95%8C%EB%A0%89%EC%82%B0%EB%93%9C%EB%A5%B4_2%EC%84%B8)
6. 나무위키, 러시아 혁명, (https://namu.wiki/w/%EB%9F%AC%EC%8B%9C%EC%95%84%20%ED%98%81%EB%AA%85)
내일이면 11월의 마지막 주가 시작된다. 외갓집 김장 때 잔심부름도 했고, 인스타를 통해서 곧 신춘문예가 다가옴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권현지 시인의 시를 골랐다. 제25회 <시로 여는 세상>에 신인상 당선작이란 제목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흐린 눈으로 읽었을 때, '발룻'이란 시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발룻'이란 부화 직전의 오리 알을 삶은 것이라고 시에 친절히 설명해 줬다. 그렇지만 네이버에 검색하니까, 우리나라 보신탕처럼 필리핀 남성들이 즐겨 먹는 간식거리라고 한다. 사진으로 보니까 생각 이상으로 충격적인데, 하지만 그것이 한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하니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면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1연의 분위기는 잔잔하게 시작한다. '요트 안으로 멈춘 오후 3시'를 별생각 없이 읽고 있으면 모네의 그림이 생각나는 햇빛 가득한 장면이 떠오른다. '당신을 내려다보며 파라솔 위의 점심을 추억하는 중이다'라고 하면서 화자가 상대와 있었던 추억을 회상하는 아름다운 장면 같다. 제목인 '발룻'의 뜻을 몰랐다면 말이다. 난 '멈춘 오후 3시'가 부화 직전 오리의 죽음으로 들리고, '당신을 내려다보며'는 이미 죽어 있는 오리를 내려다보는 듯 폭력적인 앵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오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추천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떠올랐다. 평화롭고 잔잔한 부유층의 삶 너머에 짓밟히고 있던 소외된 계층을 치밀하게 계획해서 보여준 영화다. 그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침묵이 세상에서 낼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소리가 될 수 있음을 영화에서 시사했다는 말을, 유튜브에서 언뜻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시와 그 영화의 뉘앙스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폭력적인 것을 가장 반대되는 말 평화적으로 풀어낸 것이 말이다.
2연은 1연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여행자 가족들은 즐거운 저녁 메뉴를 떠올린다' 혹은 '당신도 유유히 흘러가는 중이다'라는 분위기를 보면 평화로워 보인다. 동시에 '피의 사원' 그리고 '이편을 향해 탈출하고 싶다' 또는 '당신은 언제나 번호들을 폐기하고 싶지만'을 보면 밝음 이면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을 통해 느낀 점은,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지만 개인의 내면은 황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피의 사원'이 그저 시에서 사용된 묘사가 아니라 실제로 피의 사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피의 사원'은 러시아에 위치한 그리스도 부활의 의미를 지닌 사원으로, 실제로 1881년 이곳에서 암살당한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피를 가리키기도 한다고 나무위키에서 읽었다.
2연에서 또 다른 느낀 점은 알듯 말 듯 이야기가 와닿지 않고. 내용이 많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금발의 여인들은 받침을 걸친 듯 비문 없는 완전한 언덕을 향해 걸어간다'와 '구두를 잃어버린 주인처럼, 당신은 가끔 고독에 합류한다 이편을 향해 탈출하고 싶다'는 한 행으로 되어 있다. 따로 떼어 놓는다면 좀 더 와닿을 것 같은데 서로 붙어 있으니 내게는 의미가 과하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확실히 멋진 문장인 것 같다. 특히 '금발의 여인들은 받침을 걸친 듯 비문 없는 완전한 언덕을 향해 걸어간다'라는 말이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3연에서 느낀 점은 대충 읽으면 내용이 과하게 느껴지고, 찬찬히 읽으면 내용이 촘촘하다고 느껴진다. 3연의 1행도 길다. '들개들이 기지개를 켜는 오후는 지루하다'라며 나른한 오후라는 시간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긴 소매의 구멍, 검은 제복을 입은 신부들'이란 묘사를 보면 신성함보다는 어쩌면 타락한 이들을 묘사한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성가의 화음이 지붕을 휘감으면 역사는 반추되는가'라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성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일이 과연 역사를 돌아보는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저 문장을 통해서 나는 교회가 추구하는 이상과는 추악한 현실이 대비됨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3연 1행의 마지막 부분 '액자에 걸린 왕비의 붉은 웃음' '사진 안에서만 영원히 흡혈하는가'과 2행 '사과 한 알이 바닥 위로 툭, 떨어지면 균열 사이로 노을이 깃든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사진 안에서만 영원히 흡혈하는가'가 굉장히 기괴하게 들렸다.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다가 내린 결론은, 왕비는 살아서도 시민들의 땀을 흡혈했을 것을 저리 표현한 것 같다. '왕비'라는 지위도 부유층에 속하며 누리는 계급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비되게 '과실수는 허기를 느낀다'라는 말에서 '과실수'는 일반 시민을 지칭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과 한 알'이 '균열 사이로 노을이 깃든다'라는 말은 어쩐지 내게 '시민 혁명'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 시민 혁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영화 속에 시민들이 모여서 웅장하게 노래를 부르던 모습도 연상이 된다. '노을이 깃든다'라는 말 때문에.
4연을 보면 1연에서처럼 시의 제목 '발룻'의 이미지가 생생하게 보인다. '당신에게는 냄새가 없다 달걀의 얇은 막처럼,'을 보면 네이버에서 본 뉴스 속 잔인한 사진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리고 '주머니를 뒤집으면 말라비틀어진 담배 한 개비가 만져질 뿐이다'라는 문장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조금 고민스럽다. 얇은 막 안에 있는 부화 직전의 오리를 '말라비틀어진 담배 한 개비'로 묘사한 것일까. 아무래도 그게 최적의 해석일 것 같다. 난 '주머니를 뒤집으면 말라비틀어진 담배 한 개비가 만져질 뿐이다'가 되게 감정이 잘 전달되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저 문장 자체로 '허무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4연까지 보니까 아무래도 시에서 '당신'은 '발룻' 혹은 '부화 직전에 죽은 오리'일 것 같다. 그래서 2연에 '소속되지 않은 전화번호들이 넘쳐나고'는 죽은 생명이 걸어보지 못한 미래의 무수한 여러 갈래가 아닐까 싶다. '요트 안으로 멈춘 오후 3시'라던가 '유폐된 요트' 모두 '발룻'을 지칭한다고 여겨진다.
5연 네바 강은 러시아 북서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흐르는 강이라고 한다. 앞서 나온 피의 사원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캠벨 통조림' 검색하니까 앤디 워홀의 예술 작품이란 말이 나온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녹슨' 혹은 '말라비틀어진'이란 수식어 같다. 여기서 보면 '녹슨 캠벨 통조림' '말라비틀어진 과일 조각' '염분으로 보존된 책상 앞의 시선'은 모두 '녹슨 철제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라고 한다. 앞에 나온 3개의 공통점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고, '녹슨 철제 시계'라는 말처럼 지나간 과거에 묻혀있단 말 같다.
5연을 보고 또다시 느낀 것이 '요트 안의 시체' '녹슨 캠벨 통조림' '말라비틀어진 과일 조각' '염분으로 보존된 책상' '녹슨 철제 시계' 이런 표현들이 길이도 비슷하고, 비슷한 표현 여러 개가 열거된 느낌이다. 내게 이 시는 장단점이 명확한 시 같다.
여기까지 읽으니까 드는 생각은 '발룻'이란 것은 시에서 나타난 은유 같고, '피의 사원' '네바 강'에 나온 러시아 알렉산더 2세 암살 사건이 시에서 말하고 싶은 주요 내용 같다. 마지막 6연을 보니까 '파라솔이 접힌다'는 한 시대가 접혔다로 보인다. 그럼 여기서 '당신'은 '발룻'이면서 동시에 '알렉산드로 2세'였구나 싶다. 그럼 '멈춘 오후 3시'라는 것은 알렉산드로 3세가 오기 전을 말하는 것으로도 연결이 된다.
가장 좋았던 문장을 떠올려보면, 3연이 통으로 좋았다. 그리고 문득 시 제목이 '요트 안으로 멈춘 오후 3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드는 다른 생각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화자는 '당신'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구나였다. 4연을 보면 '당신에게는 냄새가 없다 달걀의 얇은 막처럼,/ 주머니를 뒤집으면 말라비틀어진 담배 한 개비가 만져질 뿐이다'가 처음에는 '발룻'의 이미지로 연상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렉산드로 2세'의 영혼처럼 여겨진다.
확실히 '발룻'이란 시는 내가 좋아하는 은유적 이미지들이 가득한 시다. 그래서 처음 마음에 들었고, 다시 보니까 은유가 과한 것 같다가도, 또 읽어보면 마음에 드는 은유를 발견하고, 결국 다 읽어보면 이건 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헷갈린다. 뭐 다른 시들도 마지막까지 다 읽으면, 시에서 하고 싶은 문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을 나는 늘 어려워했다. 근데 이 시는 그런 시들 중에서도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뭔가 시에서 준 힌트로 가닥은 잡은 것 같은데 직접적인 답을 찾지 못한 기분이다.
여기서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2연에서는 '당신'의 성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3연에서는 은유적으로 등장하며, 4연에서는 한 인물의 초상화가 보이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시에서 한 인물의 초상을 그린 게 아닐까 싶다. 이미 죽었지만 아직 못다 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인물을 앞세워서 말이다.
역시 시는 너무 어렵다. 마음에 드는 시라고 해서 안 어려운 거 아니다. 사실 아까 괜히 제목이 1연 1행이었으면 어떨까 했지만, 다시 보니까 뭐 '발룻'도 잘 어울린다. 이 시도 통으로 보았을 때 구조적으로 예쁜 시 같다. 초반에는 적고 중간이 일 길고 점점 줄어드는 형태가 완벽한 마름모꼴 같기도 하다. 또 제목이 '발룻'이고 마지막 행에 '발룻'이 나와서 이 또한 내 기준에 수미상관의 구조를 띈 게 아닌가 싶다.
다시 처음으로 '발룻'에 대해 생각해 보면 부화 직전의 오리 알을 삶은 것이 잔인하기도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 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것처럼 역사에서 '살인'이 쿠데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혁명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시인은 잘 엮어서 표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