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케도 붙어 있는 내 두 손이 고맙구나

박노해 시인의 졸음

by 시적

출처

1. 박노해, 노동의 새벽, 느린 걸음, 2004, 73-75p

2. 네이버 블로그, 하늘을 나는 새는 뼈를 가볍게 한다, 박노해 <졸음> (https://blog.naver.com/tongsae3/223528127043)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을 갖고 있다. 베스트셀러 수업 때 샀던 시집인데 지금 다시 보니까 내게 어렵게 다가오는 시 같다. 책날개를 펼쳐보면 1967년생으로 1984년 처음 이 시집을 출간하며, '얼굴 없는 시인' 그리고 민주화운동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시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1965년생 아빠를 위한 자서전을 위해 인터뷰할 때 공장에서 시다로 일했다고 할 때 들어본 말이다. 여러모로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그리고 시를 봤을 때 전체적으로 2-3p 되는 긴 시들이 많다. 또 흐린 눈으로 읽어봤을 때 내가 아는 시의 형식이 아니라 말하듯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 시였다. 복잡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말이 또렷해 보였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호불호가 갈려서.


그중에 '졸음'이라는 시를 골랐다. 기대감을 안고 과연 네이버 블로그에 이 시를 게재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검색해 봤다. 그랬더니 국립장애인도서관에도 게재되어 있고, 또 블로그에도 2군데 올라와 있음을 발견했다. 이럴 때 괜히 '내가 대중적인 시를 골랐구먼.'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깨가 으쓱해진다. 일단 흐린 눈으로 봐도 '졸음'은 단어들이 다양하게 변주하며 어떤 구성의 형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1970년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하여 열악한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그 사건과 같은 맥락으로 '졸음'이란 시는 졸려도 계속 일을 해야 하고 또 다쳐가면서도 졸음을 참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 이 시가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면서도 동시에 의도가 잘 표현된 시라고 생각이 되었다.


1연에서는 배에 물건을 싣는 날짜가 다가오면 강행군이 시작된다고 한다. '방세' 혹은 '아파서 밀린 곗돈'을 위해 노동자들은 '주 78시간이건, 84시간은 먹어치워야 한다'라고 시에 적혀있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을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과한 시간들이다. 그리고 11-12시간을 매일 일해야 하는 그들의 현실을 낱낱이 계산한 시간으로 보여주면서 내게 더 폭력적이며 인상적이게 다가왔다. 특히 '쉬임없이 몰아치는'이나 '먹어치워야 한다'는 노동자들에게 선택권이 없으며 느닷없이 몰아닥쳤다는 이미지를 잘 떠올리게 해 줬다.


2연에서는 '전생에 일 못하고 잠 못 잔 귀신이 씌었나/ 꼬집어도 찔러도 혀를 깨물어도/ 고된 피로의 바다 졸음의 물결에/ 꼴까닥 꼴까닥'이라며 잠 못 자고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2연 1행을 보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혹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두 개가 믹스되어서 절묘하게 주제와 연결 지어 시인이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서글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간간히 위트를 넣은 듯한 인상을 내게 주었다. 잠이 올 때는 어떤 짓을 해도 절대 잠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경험해 봤기에 '꼬집어도 찔러도 혀를 깨물어도'는 공감이 갔다. 그리고 '고딘 피로의 바다 졸음의 물결에'라는 문장을 보면서는 고전문학의 한 구절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의 바다에 노동자들이 '꼴까닥 꼴까닥' 그 경계를 넘나든다는 의성어 역시도 좋았다.


그리고 어쩌면 '꼴까닥 꼴까닥'은 노동자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의성어일 것이다. 다음 행을 보면 '눈앞에는 프레스의 허연 칼날이 쓰을컹 툭탁'이라고 되어 있다. '미싱을 때려밟는 순정이'가 고된 노동으로 피로해서 잠을 못 이기는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간결한 문장으로 시에서 잘 표현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 어린 시다는 '눈감고도 죽죽 누비는 자동기계'가 되었다고 사람을 기계라고 지칭하며 스스로를 풍자하는 느낌이 들었다. '깨어진 손을 감싸 울면서도/ 눈이 감긴다'라니. 너무 비극적이다. 지금 눈앞에 목도한 깨어진 손의 고통보다 쏟아지는 잠의 무게가 더 강렬하다는 것이 말이다. 이어 작업장에는 '마이클 잭슨의 괴성,/ 조용필의 흐느낌이 지침없이 흘러나오고'라고 말하고 있다. 공장에서는 일하면서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고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일단 라디오 역시 '기계'이고 아무 문제 없이 노래가 흘러 나오고, 공장의 상황은 '혼비백산'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이 둘의 상황이 대비되는 것 역시 너무 좋았다. 그러고서 2연 마지막에 나온 문장은 너무 처연하다. '잠 안 자는 짐승이 되기를 원하며/ 피 흐르는 손가락을 묶는다'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능을 거슬러서 인간 스스로 '기계'가 되고 싶다고 선언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3연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이것이었다. '미치게 미치게 졸려, '라는 이 문장에 내 눈에 또렷하게 보였다. 미치게 졸리지만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 외에 탈출구가 없어서, 자신의 마음을 강조하기 위해 미치게를 두 번 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케도 붙어 있는 내 두 손이 고맙구나'라는 말에서 이런 감정도 느꼈다. 손이 붙어 있는 것이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인데 그런 일에도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그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현실이 슬프게 내게 들려왔다.


4연에서 '시커먼 무짠지처럼/ 피로와 졸음에 절여진 스물일곱 청춘,'이라며 피곤한 노동자의 얼굴을 저렇게 묘사하고 있다. 순간 '무짠지'가 왜 시커멓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랗게 물든 단무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근데 간장으로 담근 '무짠지' 보니까 어마어마하게 시커멓다. 저런 표현이 내게 좀 낯설면서 박노해 시인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저임금의 포승줄에 끌려'라는 표현도 좀 내게 재밌었다. 포승줄은 죄인을 포박해서 행동을 제한할 때 쓰는 줄인데 그 앞에 '저임금'이라는 무 생명체가 놓여있다. 내용을 보면 전혀 재밌지 않지만 저런 표현이 내게는 기발하게 들렸다. 적은 돈을 주지만 그것마저도 없으면 안 돼서 저임금으로도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표현이다. 내게 이 시는 형식과 내용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시로 느껴진다.


마지막 5연에서 '졸며 절며'라는 구절에 눈이 갔다. 비슷한 두 개의 문장이 현재의 상황을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졸음을 참아가며 일을 하다가 땀이나 기름에 절어 사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 너무 적나라한 표현이지만 '지옥 같은 전쟁터'라는 말이 박노해 시인이 본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벗어나지 못하고 '저주스러운 기계 앞에/ 꿇어앉는다'로 '졸음'이라는 시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마치 내게 '꿇어앉는다'라는 말에 신현준 배우가 영화 은행나무에서 했던 황장군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다. 이 사진은 매년 겨울 뉴스에 나온다고 뉴스에 난 유명한 사진이다. 혹은 오랫동안 기다리다 결국 돌부처가 돼버리고 만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다.


나는 처음 '졸음'이라는 시를 읽고 '산업재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도 기사에 보면 어느 건설현장에서 추락사를 한다던지, 과로와 스트레스로 돌연사한 사건이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1984년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아직 나아가야 하는 길이 있음이 분명한 오늘이다. 그래서 이 시가 눈에 띄었다. 군데군데 보인 표현도 마음에 들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과거에 이 시집을 처음 샀을 무렵 아버지에게도 이 시집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되게 공감하면서 자신의 옛날 공장에서 일하던 시기도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 어쩐지 내게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은 아버지를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 대선투표 때마다 언제나 '노동자의 권리가 중요하다.'며 핏대를 세워가며 말하던 아버지랑 말이다.


이 시집은 내게 투박하지만 그 시대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 평이해서 어려웠다. 너무 어려운 말이 많아도 어려운데. 참 알 수 없는 게 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을 맨 마지막으로 '졸음'이란 시의 본문에서 뽑아봤다. 보고 있으니 어쩐지 너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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