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賞春)

내 마음에 비친 봄

by 모모씨
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Unsplash







작심하고 봄맞이 대청소를 하다가,

책장 서랍 깊이 방치되어 있던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편지들을 꺼내 본다.


30년보다도 더 먼 옛날...

들끓던 젊음이 편지지 위에서

소란스럽게 피어올랐다.


그때의 우리는 자로 잰 듯 예민했고,

바닥을 모를 만큼 깊이 슬펐으며,

아주 사소한 것들로 배가 찢어질 듯 웃었다.




청소는 미룬 채, 캐비닛 속 깊숙이 넣어 두었던

모나미 잉크병을 꺼내 펜촉 가득 잉크를 찍어 본다.

저기압의 대기 위로 잉크 냄새가 수채화처럼 번졌다.


사각사각 종이를 가르는 펜촉의 소리,

소매깃이 종이의 섬유질을 스치는 다소 둔탁한 마찰음,

필압에 따라 불규칙하게 그려지는 글씨의 두께까지

모든 것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예측되지 않는 날것의 자유로움이 긴장을 내려놓게 했다.


들끓는 청춘의 감정은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것이라 여겼다.

균질하고 예측 가능한 것들만이

성숙한 태도이자 안정감이라 여겼는데

불규칙한 감각들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은

또 다른 질감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갔다.

그때에 내가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썼던 편지들은

지금 누군가의 책장 속에 잠들어 있을까...

내 책장에 박제되어 남은 친구들의 꿈과 열정처럼

그때의 내 기쁨과 슬픔, 불안과 희망도

누군가의 책장 속에서 가끔은 먼지를 털고 깨어날까...

그들의 스물이 우체국 소인으로 봉인되어

나의 책장에 남겨진 것처럼

나의 스물도 이제는 그것을 추억하는 내 벗들의 것일 뿐

나의 것이 아니다.



제법 굵게 내리는 봄비에 벚꽃 잎이 섞여 떨어진다.

봄비는 꽃비가 되었다.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 애써 보다가

끝끝내 잡히지 않는 야속한 꽃잎을 흘겨본다.

이 꽃들이 다 지면 신록은 한층 깊어지겠지...


연분홍빛 봄이 손가락 사이로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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