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짐으로써 깨침
동생은 뉴욕의 재즈드러머다.
이름을 떨치는 뮤지션은 아니다 보니 '재즈드러머'라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삶을 현실적이고 다소 고된 또 다른 삶이 받쳐줘야 한다. 드럼 레슨도 하고 파트타임 잡도 하며 살고 있다. 어느 날, 동생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아로마 용품 매장의 보스가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말하자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동생을 질책하며 히스테리에 가까운 분노를 터뜨렸다고 한다.
너무나 납득할 수 없는 보스의 야단을 듣고 있자니 동생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분노나 해명이 아니라, '아, 이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였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폭풍 같은 야단을 듣는 상황이라면 뭔가 반박 혹은 방어라도 하고 싶었을 법 한데 동생은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가만히 보스의 화를 듣고 있는 동생에게 보스는 이제 그만 나오라며 해고를 통보했고 동생은 그 화를 다 듣고도 한 마디 말대꾸나 감정의 동요 없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쯤에서 한 번 짚고 지나가자면 동생은 1남 3녀 중 막내로 엄마의 이쁨과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란 데다가 바로 손위 자매인 나와는 4살이나 차이나는(어쩌면 내가 누렸을지 모를 막내 지위를 가로챈) 천상 막내였다. 내 시각으로 보면 약간의 4차원 감성이 탑재된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인간형에 가깝다. 조금 더 심플하게 말하자면 '해맑은 캐릭터'로 일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을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는 다소 복잡한 내면을 가진 나와는 어려서부터 감정의 결이 다른 참 막내다운 아이였다. (동생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평가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므로 동생 자신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런 동생이 뉴욕 생활 십수 년만에 저렇게 성숙한 면모를 보였다니 내심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혼자서 지구 반대편에서 사는 일이 녹록지는 않았나 보다 싶어 마음이 짠했다. 그 모든 부침과 고난들이 동생을 득도의 길로 이끈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두어 달쯤 후에 부당하게 자신을 해고했던 보스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사이 동생이 일하던 그 자리에 여러 사람이 거쳐갔다고... 동생 없는 빈자리가 아주 크더라며 그때 왜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하더란다. 그러면서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와서 일해 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럼 그렇지 뒤늦게라도 보스가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보스의 언행이 괘씸하고 억울하니 나 같으면 그 자리에는 다시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은 한동안 생각을 해보고 보스의 제안대로 다시 일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대신 보스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고 자신이 가능한 시간만큼으로 근무 시간을 줄여서 업무의 비중을 낮췄다고 했다. 이 또한 그동안 동생을 철부지 막내로만 여겼던 내 판단을 무너뜨리는 대응이었다. 동생은 상처를 상처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예쁜 기억으로 다시 칠해 더 나은 경험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우리가 멀리 떨어져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시간 동안 동생의 내면은 많이 성숙해 있었다.
'킨츠키공예'라는 것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 적잖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사기그릇은 실금이 가거나 이가 빠지면 무조건 버려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망가진 그릇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니... 그릇의 깨지고 벌어진 금 사이를 금박으로 붙여 상처를 더 부각했는데 그릇은 깨지기 전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했다. 반짝이는 실금들이 여기저기로 뻗은 그릇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멀쩡한 그릇들을 일부러 깨뜨려 금박장식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감추기에만 급급하던 상처를 오히려 부각함으로써 존재를 재정의하고 상처 입은 존재가 또 다른 가치로 태어날 수 있다는 깨우침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상처는 존재를 부술 수 없다. 존재를 부수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자잘한 가지 끝의 꽃봉오리마다 통통히 물이 오른 4월의 벚나무들을 보며, 모든 순간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야지, 내 내면의 상처들도 더 아름답고 성숙한 나를 위한 '킨츠키'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