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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두두 Mar 07. 2023

이것마저 순서가 바뀌었네

당신이 ADHD를 의심하고 있다면 써보면 좋을 것


운이 좋았다. 더럽게도 운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맞았다. 아마 학창 시절엔 예체능을 선택했고 그림 그리는 일을 했으니, 본인의 주의력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몰랐을거라는 말이 맞았다. 



분명 덜렁이고 실수하는건 일상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무거워지는 책임감에 더 조심하고 노력해도 나는 이미 그런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아 물론 그렇다고 실수를 안하는건 아니였고...) 누구나 하는 실수도 내가 하면 더 큰 실수로 느껴졌다. 그런게 반복되니 위축되고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도 잦은 실수→자존감 하락→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검사까지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만큼은 아녔다. 웃기게도 그만큼의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성격이라 생각했고, 오히려 주변에서는 내가 가진 얕은 능력(이라기도 부끄럽지만)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 떠나서 혼자서 일하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 같다. 아마 회사를 다녔으면 주변에 온갖 민폐 끼치다, 난 3일만에 뛰쳐 나왔을 인간이다. 나란 인간...     

                              



병원을 다녀와 가장 먼저 한건 내 히스토리를 꼼꼼하게 기록한 일이다. 이것 또한 거꾸로 되어버렸네. 그럼에도 돌이켜보는건 의미 있으니까. 순서가 무슨 상관이여!






나 성인 ADHD아냐...? 목록


-집중을 못하고 이거하다가 저거하다를 반복하는건 일상.

-자주 깜빡깜빡함 (아 맞다! 단골 멘트)

-즉흥적, 충독적, 많은 것들에 관심

-마무리나 정리 정돈 못함.

-덜렁인다

                                                                                                                                                                                                                                                                                                                                                                                                                                                                              학창시절


뭐 잃어버리는건 다반사. 대표적으로 그 당시 꽤 고가였던 디카를 두번이나 잃어버렸다.

감정의 기복이 널을 뜀. 욱하는 경우가 많음. 괴팍하다. 성격파탄자란 별명도 있었음

→ 이건 완전 잊고 있었는데….. 기억해냈다

요점정리, 줄거리 쓰는거 어려움

좋아하는건 미치게 빠져 듬. 한창 홈페이지 만들고, 사진 보정하는거에 빠져서 밤을 새서 함. 멈출 수가 없음.

→ 멈추고 자려고 누우면 자꾸 생각나서 결국 해야 함.

싫어하는 건 절대 안함

→ 미술을 좋아하고, 수학을 싫어하는데 예체능 계열이라는 이유로 잘 맞음

벼락치기



대학-출산 : 20대-30대


감정 널뛰기 지속, 대인 기피증

→ 사람 만나는게 너무 힘들어서 약속을 잡고도 당일에 취소하거나 하는 경우가 잦았음

난독증

→ 대학때 과제를 해야하는 경우에도 전혀 글이 읽히지 않아 친구에게 요점을 정리해달라고 부탁할 정도.

우울감이 많아짐. 충동(폭식증) 중독(운동)의 반복. 수면 장애(중간중간 깨거나, 새벽에 깸). 산후우울증. 생리전 증후군 심함. 관심 분야가 급격히 넓어짐.

쉴 새 없이 움직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함

→  먹지도 않는데 베이킹을 엄청 함. 그리고 냉동실에 박아두고.

→ 아마 이때의 난 우울증이었던 것 같음. 스스로 가치가 너무 없다고 매일 같이 느꼈고, 자책을 하는 경우도 잦았다. 너무 힘들어 남편 붙들고 병원을 가고 싶다고 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음.



현재


무기력. 활기를 많이 잃음. 시큰둥



일적인 부분


마감이 있는 일 계속 미루다가 마감을 앞두고 처리.

집중력 부족으로 효율 개똥망.

→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보다 곱절은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느낌.

반복되고 지루한 일에 취약(문서 작업, 엑셀작업, 행정적 업무 디져라 싫어함…)

새로운 일을 할 때 도파민 팡팡! 너무 재미있음. 겁도 없이 시작은 하되 마무리가 늘 어려움.



일상


하기 싫은건 미루고 미룸 

-> 빨래 접기라던지 옷장 정리라던지.

타인과의 대화에서 지루함을 느끼면 금방 생각이 다른데로 가는 경우가 많음

독서를 할때 눈을 글을 따라 가는데, 내용 입력이 잘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음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주제가 생각나면 그쪽으로 빠질때가 있음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하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일상의 균열들이 생기겠지. 결국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니까. 그래서 보통 사회 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음. 나는 운이 좋았네.

고등학교때는 좋아하는걸 결정하다보니, 극혐하는 수학을 안해도 됐고. 

수백번의 벼락치기 실력으로 대학도 학부에서 수석 입학하게 됐다. 물론 입학 후, 엉멍진창인 학점으로 전액 장학금은 두번 받았나...4년 장학생이었지만 의미 없게 되어버렸고.

대학 졸업 후엔 프리랜서로 일했다. 벼락 치기를 하더라도 마감은 꼭 지켰다. 이럴 때 오는 희열!!! 쾌감!!!! 최고야!!! 개뿔. 백날 고치고 싶어도 고칠 수가 없었다.

최근 몇 년은 나에게 자유도가 굉장히 주어지는 역할의 일을 했다.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 마저도 인정 받아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있도록 굉장한 배려를 받아 일했다. 운이 좋았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운이 좋기만 할 수 있나. 

그러다가 결국 내 한계와 마주하게 됐는데....







병원을 다녀와 엄마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변에 또 눈물이 차올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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