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꿈들
박여사가 세상을 떠나고 49제가 되는 날까지 박여사는 내 집 드나들듯 늘 내 꿈속에 나왔다. 꿈들이 너무도 생생하서 마치 박여사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첫 번째 꿈.
나는 재래시장에 갔고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평소에도 자주 사던 집게핀들을 고르고 있던 박여사가 보였다. 그런데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하얀 한복을 곱게 입은 할머니가 엄마를 지긋이 바라보고 계셨다. 박여사는 가족묘지에 같이 모시게 되었는데 아마 할머니는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왜 왔나 싶어서 보고 계신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박여사를 붙잡고 서럽게 울었다. 울지 말걸... 나는 그렇게 꿈에서 깨며 후회했다.
두 번째 꿈.
박여사는 무언가를 부랴부랴 정리하고 있었다. 여행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곧 떠나야 한다고만 했다. 일상적인 모습이었는데 노트에 무언가를 급하게 적길래 무얼 적냐고 하니깐 "엄마가 없어도 김치 잘 챙겨 먹어"라며 김치 담그는 레시피라고 했다. 평소에 그렇게 알려달라고 해도 그냥 손맛이라며 알려주지도 않더니... 그렇게 꿈에서 깨고 며칠 후, 이모가 김치를 담갔다며 나누어 주신다고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박여사가 보낸 건가 싶어서 또다시 서럽게 울었다.
세 번째 꿈.
유채꽃이 만발한 시골 어딘가 평상에서 박여사는 외할머니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중풍이라는 병이 있으셨고 어릴 적 내 기억의 외할머니는 말이 늘 어눌하셨으나 꿈속에서는 더 이상 어눌하지가 않으셨다. 박여사는 외할머니를 늘 그리워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난 너무 어려 죽음이란 것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이 닫힌 안방에서 "엄마 엄마"하며 너무도 슬프게 울고 있는 박여사의 소리를 들었다. 그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박여사는 외할머니를 많이도 그리워했던 것 같다. 박여사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도 외할머니 산소에 가서 조용히 이모들을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 눈물 가득한 얼굴로 내려왔다 했다. 나는 박여사에게 큰 위로가 되지 못하고 든든한 딸로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게 가장 큰 미안함으로 남아있으나 꿈에서라도 박여사가 행복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네 번째 꿈.
박여사가 많이 그리운 날이었다. 박여사와 못다 한 이야기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남은 사람들에겐 많은 것이 후회로 남는다. 꿈속에서 또다시 박여사를 만났고, 나는 옛날처럼 박여사의 팔짱을 끼고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하고 즐겁게 깔깔대며 웃었는데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전에는 그렇게 많은 행복했던 일상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 나는 박여사에게 "엄마,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맛있는 스파게티집 알아뒀어. 우리 거기 가자. 내가 사줄게"라고 이야기하니 박여사는 순간 슬픈 표정이 보였으나 "그래 가자"-라고 했다. 나는 박여사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렇게 함께 걸어가니 꿈에서 너무도 행복했다. 이것이 박여사가 내 마음을 보듬어주기 위해 준 마지막 선물이 아닌가 싶었다.
박여사는 49제가 지나고는 한동안 찾아오지 않다가 이후에 또 찾아왔다. 박여사가 내 곁에 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꼭 그럴 때면 박여사는 아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무의식의 반영인 건지 한동안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박여사가 외할머니를 만나 행복해했던 것처럼 나도 박여사를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이 있다. 혼자 남은 아빠 꼭 잘 모시고 아이들 예쁘게 키워둘 테니 나중에 꼭 만나자, 나의 박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