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
박여사는 떠날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그녀가 이렇게 빨리 떠날 줄 알지 못했다.
왜 내게 인사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떠난 건지, 왜 그렇게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들게 하고 죄책감을 갖게 하는 건지 원망스러우면서도 나는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이 그녀의 부재가 무척이나 슬프고 그립고 보고 싶다.
떠날 것을 알지 못했던 그녀였지만 집에 가서 보니 집은 쓰레기 하나 없이 너무나도 깨끗했고 물건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래된 사진첩들도 시간대별로 정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인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베풀고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간 마지막 여행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녀는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고, 갑자기 이빨이 예고 없이 푹 빠지는 꿈을 꾼 게 불안하다고 했다. 윗니가 빠졌다며 필시 웃어른일 거라고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했었다. 가장 맏언니였던 그녀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모두가 기리는 방식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물건을 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같은 가족이지만 먼발치에서 타인을 바라보듯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아끼던 가족이었는데 단편적인 모습일지언정 나는 그들이 참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십거리인 양 장례식에 초대도 받지 않은 사람에 왜 돌아가셨냐고 캐물으면서 오로지 그것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와중 아무 말 없이 그저 슬퍼하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서 박여사가 헛된 삶을 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만 해도 성인이 되고 한국에 산적이 없지만 바로 달려와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다. 부고 소식에도 아무 말 없던 지인들도 있었고 왜냐고 호기심만 가득해 물어보던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 상황에서 가벼운 위로로 위장한 '호기심'이 가장 언짢았다. 또 박여사 사고와 관련된 몇 개의 기사를 보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쉽게 이야기를 하고 좋아요 싫어요 등 이모티콘을 누르는 게 타인의 이야기를 너무나도 가볍게 여김에 참을 수 없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난다면 혹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면, 그들에겐 말없이 잡아주는 손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제일 고마운 것일 거다. 모든 경조사를 통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와 그들 사이의 거리가 보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