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사가 떠난 후 일년 반

우울증

by 모모

박여사가 떠난 후, 그녀에 대한 기억과 생각에 대한 글을 써서 그녀를 기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녀를 기리며 두 아이와의 평밤한 일상을 유지하는 일은 굉장히 정신적으로 감당이 어려웠다.


더군다나 우리 가족은 박여사가 떠난이후 더욱 융합이 안되었다. 아마도 나는 멀리있고 대부분 내 생활은 엄마가 오셔서 함께 했고 아빠와는 큰 교류가 없어서일수도 있지만 어느순간 아빠는 내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듯했다. 아무리 내가 다른말을 해도 내 이야기는 듣지 않으시는 듯했다. 내가 하던 사업에 동생이 들어왔다가 재정 부분에서 욕심을 부리고 내가 한국에 없다는 이유로 은행 에러를 강제적으로 만드는 등 비정상적인 통제와 강요로 (당시 부모님은 크게 문제 만들지 말라고 -) 매월 하는 일에 비해 큰돈을 줬지만 돌아오는 것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뒷이야기와 안좋은 시선 뿐이었다. 심지어 장례식에서도 시비를 걸던 동생놈이었는데 가족이라는 거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않고 뒤통수만 때리면서 아빠 옆에는 그리 잘붙어서 뒷이야기 해대고 효자노릇하며 돈도 받아간다. 내가 하는 말한마디는 동생놈에게는 수단과 방패로만 이용되는듯했다. 그래도 아빠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었는데 가까이 있는것만큼 영향력 있은건 없나보다. 아빠도 나를 보지않은 시간이 길었음에도 동생에게 들은 말들로 내게 이미 부정적인 생각들이 뿌리없이 박혀있는데다 박여사에 대한 오랜 미움을 나에게로 돌린듯했다. 가족들이지만 모두 박여사를 기리는 방법조차 달랐고, 박여사에 대한 마음을 공유할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박여사는 이렇게 혼자였구나.


이후 유품정리하러 두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박여사의 집에서 머물다 돌아와서는 우울증에 빠져버렸다. 도움이 필요할때는 아무도 도와주는 이는 없다는 걸 - 누구에게도 기댈수 없다는 고립감과 외로움은 박여사를 더욱 그립게 했다. 박여사는 그리 따뜻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적어도 그녀는 치우침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우울증 약을 먹으며 버텨왔다. 박여사를 돌아보고 싶을때는 옆에 있는 두 아이들이 내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작은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하루종일 밥달라고 졸리다고 하는 작은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다보면 하루가 금새 지나가있었다.


나는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둘째 아기가 어리기도 했지만 나는 내 스스로를 보듬는 방법도 잊어버린듯했다. 예쁜것을 좋아하던 나는 똑같은 츄리닝 두벌과 야구모자로 등하원과 슈퍼에 다녔고 집에서만 있으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지 않고 자극적인 커피 세네잔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굉장히 오랫동안 거울도 보지 않아 어느순간 내 얼굴에 파인 주름을 마주하니 너무도 낯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도 문득문득 가슴이 답답해질때가 있었고 또다시 무너져 내리는 때가 있었다. 우울증 약은 감정기복의 폭을 낮춰주었지만 근본적인 서러움과 슬픔의 감정을 없애주진 못했다.


다만 아이들과의 일상으로 그녀를 조금씩 덜 생각하게 되어갔고 내 마음은 조금씩 박여사와 이별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박여사가 떠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