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by 모모

내 남편은 외국인이다. 한국사람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 대답하면 대부분 못 사는 나라 출신이라고 인식이 먼저인듯한데 그들의 표정과 제스처는 종종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다만 그런 출신에 대한 차별이 적고 이미 어느 정도 몇 세대 이민자들이 있는 내가 사는 이곳에서는 출신은 중요하진 않았다. 나는 편견 없이 남편을 봤고 인성이 참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결혼해서도 남편은 변함이 없다. 남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만큼 밖에서 승진도 빠르고 마지막 고지만을 앞에 두고 있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은 참 괜찮은 사람인 것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내가 남편을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결혼을 할 때 박여사는 인물좋고 건장하고 성격 무던한 내 남편을 마음에 들어 해 결혼식 내내 미소가 있었다. 반면에 내 아빠는 내 남편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보였다. 못 사는 나라 출신이라는 인식이 강한듯했고 돈 들여 공부시킨 딸이 좀 더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도 있는듯했다. 다만 겉으로 티를 안 내려 하셨기 때문에 당시에는 잘 몰랐고 대부분 박여사가 나서서 잘 이끌어 주었기 때문에 한국 방문도 부담이 없었고 남편도 좋아했다.


나는 남편집에서 보면 반대로 부유한 나라 출신이다. 우리 집은 물질적으로 풍족해 나와 동생은 지원을 받아 유학도 다녀올 수 있었고 그 덕으로 석사까지 마쳤으니 가방끈도 길다. 결혼할 때 남편 쪽에서는 외국인과의 결혼이 흔하지 않아 반대를 했었으나 남편이 설득했고 내가 부족함 없이 자랐고 공부도 많이 했기 때문에 남편이 혹여 어려울 때 현명하게 헤쳐나가고 적어도 비빌곳은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생활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을 잘 알지 못하고 높은 생활수준에 익숙하다 보니 소비도 컸다. 아이 둘을 낳고 내 사업을 안 하는 상황에서 남편에게 재정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니 내가 사실 가계 운영에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더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박여사가 떠나고 모든 재정적인 이득은 아들인 동생에게 다 가버려서 나는 사실상 남편에게만 의지하는 존재인데 내 긴 가방끈도 이런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 육아만을 전담하고 출산 후 약해진 몸으로 기껏 기본적인 집안일을 해나가는 정도에 머물러있다.


박여사가 떠나기 전 그녀가 사는 신도시 아파트는 꼭 내게 주고 싶다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두었고 그게 마지막 유언같이 남아있어 아빠는 나중에 그 집을 내게 주겠다 했다. 박여사는 나중에 오갈곳 없더라도 집이 있으면 든든한게 있을테고 그집을 은근히 동생네가 넘보는게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듯했다. 박여사가 떠나고 그집엔 지금 세입자가 들어가고 불법으로 돈도 내지 않고 문제만 일으켜 아빠는 그 집을 얼른 처분해하고 싶어 하는 눈치다. 아마 점점 짐처럼 여기는듯하고 현금화해야 좋을 테니 옆에서 동생네가 부추기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가 불어놓았던 입김도 점차 사그라드니 바램을 지킨다는 목적도 희미해지는 듯하다.


더군다나 늘 안식처라 생각하고 방문하던 한국이었는데 함께하던 엄마의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지고 - 혼자 남은 아빠가 걱정돼 방문했지만 오히려 생활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가거나 하면 잔소리부터 하는 아빠모습에 과연 다음 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으니 나는 내 마음의 집마저 잃어버린 느낌이다.


박여사는 세상을 떠나고 계속 꿈에 나오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으려는 듯 마지막 꿈에서 내게 시부모님을 보내셨었다. 꿈속 시어머님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었는데 박여사는 본인 대신에 나를 보듬어 줄 수 사람을 대신 보내고 마음 편하게 떠나려나 싶은 생각이었나 싶었다. 다만 시어머님은 곧고 따뜻한 분이시지만 꿈과는 다르게 실제로 내게는 차가우셨다. 잘 나가는 아들 옆에 혹처럼 딸린 말 잘 안 통하는 며느리는 아직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신지 sns차단이 되어있다. 박여사가 틀렸다.


나는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을 그것도 박여사의 부재로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참으로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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