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교시가 끝난 어느 여름

by 고모효진

7교시가 끝난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법대에 수시 지원을 하겠다고 담임에게 말하고, 4층으로 올라가 터덜터덜 교실 뒷문을 열었다.


그 무렵 여고의 고3 교실은 늘 난장판이었다. 전문대 수시에 합격한 무리들은 오빠들을 만나러 간다며 교실 뒷문 거울 앞에 모여 달궈진 고데기로 머리를 말고 있었다. 나는 그 무리를 한심하다는 듯 힐끗 보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여자가 잘 살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장래희망란에 나는 언론인이라고 적었다. 사실은 담임이 의아해하길 바랐다. 언론인이 되고 싶은데 왜 법대에 지원하느냐고, 한 번쯤은 물어봐 주길 바랐다. 그러나 담임은 알겠다는 말 한마디만 남겼다. 얼마 전에는 고3 담임들과 어머니회 고3 엄마들의 조찬 모임이 있었다.


“우리 효진이, 경대 법대 갈 수 있겠지예?”

엄마의 답정너 질문에 담임은 두말없이 충분하다고 했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 책상 위에 놓인 풀다 만 개념원리 심화 문제 풀이를 지우개로 빡빡 문질렀다.


“야, 지진 나겠다.”


스프링처럼 탱글하게 말려 위아래로 튕겨지는 웨이브 머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고데기 무리 중 하나였다. 오빠를 만나기 전에 내 속까지 뒤집어 놓고 가겠다는 얼굴이었다. 스쳐 지나가며 던진 내 눈초리가 화근이 됐다.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에 합격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 부럽네. 곧 종 치는데? 오늘 오자 감독 학주야.”


내 말에 아차 싶은 낯으로 변해서는 고데기를 콘센트에서 힘껏 뽑아 들고 무리들과 함께 썰물처럼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부럽다고 비꼬았지만 사실 부럽기도 했다. 그들의 가벼움은 가끔 진지함으로 꽉 막힌 교실에서 숨구멍처럼 느껴졌고, 합격 후 더 가벼워진 얼굴들이 홀가분해 보여 내심 부러웠다.


여름이 되면 고3 담임들은 교실의 절반을 학교 재단의 전문대 수시에 우겨 넣었다. 그렇게 합격한 애들은 오자 야자에 없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 반면 합격하지도 못한 애들은 반에 남아 분위기를 흐렸다.

학교에는 상록반이라는 특반이 있었고, 6모 전까지 나는 상록실에서 오자 야자를 했다. 고3이 되자 모의고사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결국 나는 상록반에서 밀려났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