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2학년 6반 앞문을 열고 들어온 담임의 서류 파일 사이로 11월 모의고사 성적표가 한아름 꽂혀 있었다.
“32번~ 정민지”
민지는 2학년 때 우리 반 반장이었다. 학교에서는 다들 민지를 서울대에 보낼 거라고 말했다. 민지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였다.
1번부터 불리던 번호는 순식간에 반장의 차례가 되었다. 거의 끝 번호에 다다르자, 자신의 성적표와 서로의 성적표를 훑어본 아이들의 어수선함이 교실을 메웠다.
어수선함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민지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11월 모의고사를 치른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날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효진아! 야, 너희 독서실 불났단다! 일어나 봐라, 빨리!”
독서실에 불이 났다는 말에 이부자리를 박차고, 혼비백산 독서실로 달려갔다.
‘아... 어떡해 내 문제집들 내 노트들 아 ....... 아악!!!’
까맣게 그을린 독서실 5층엔 독서실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다.
“괜... 찮으세요?”
망연자실한 표정의 아주머닌 내 방으로 들어가 보라며 힘없는 고갯짓을 하셨다. 까맣게 그을린 방, 다 타버린 책상들 사이에서 내 책상만 불에 타지 않은 채 환한 조명을 받고 있었다.
탁!
“34번, 34번! 최효진이!”
꿈이었다. 한 달 전에 꿨던 꿈인데도 너무 생경해서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 꿈을 곱씹고 있는 사이, 내 번호가 불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수선했던 반 분위기는 교탁을 탁! 치는 소리와 함께 잦아들고 나는 서둘러 성적표를 받으러 나갔다.
반 석차 1등. 전교 석차 8등.
자리에 앉았다. 나는 반 석차 1등이 적힌 성적표를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2학년 .. 6반... 34번... 최효진..
학년 반 번호 이름, 모두 다 나였다. 내 성적표였다.
고개를 들자, 내 옆 분단 두 자리 앞에 앉은 민지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민지가 자리로 돌아가며 왜 고개를 갸우뚱 저었는지 알게 되었다.
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헐! 1등? 와!!!!”
짝궁 수진이의 말에 아이들이 수진이와 내 책상을 애워 쌌다. 아이들 틈 너머로 나를 향해 있던 민지의 고개가 천천히 거둬졌다.
그날 이후, 상록실의 자리 번호는 25번에서 8번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바뀐 건 상록실 내 번호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