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어? 김진명 소설은 정치색이 너무 편협한 것 같아서 읽기 좀 그렇던데.”
그 무렵 나는 아버지 책장에 꽂혀 있던 김진명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있었다.
아버지의 책들은 가끔 내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쓰였다. 문제집에서 눈을 떼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손이 가는 쪽이 늘 그 책장이었다.
민지는 내가 어떤 문제집을 푸는지, 어떤 단어장을 들여다보는지, 무엇을 읽는지에 관심 없는 척했지만, 늘 묻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얹었다. 평가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그런 민지의 견제가 나는 오히려 반가웠다. 주변의 친구들은 내가 읽는 소설의 제목이 재미있다거나 표지가 무섭게 생겼다는 말만 했지, 이 책이 누가 썼고 어떤 내용인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묻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반장 민지만이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늘 네거티브한 의견만 남긴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민지와 말을 더 이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었다. 민지는 자신이 구사하는 유려하고 어려운 언어들로 언제나 대화를 가로막았다.
그 보이지 않는 벽은 석식을 먹고 들어가는 상록실에서 더 단단해졌다.
1번부터 30번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상록실의 독서실 책상.
그 번호들은 마치 상록실 안에서만 통용되는 계급장 같았다. 25번이었던 내가 8번으로 옮겨가자, 민지의 보이지 않는 벽은 조금 더 노골적인 형태를 띠었다.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내주신 신문 사설을 읽고 의견을 정리하는 과제가 대학 수시 논술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과제가 없는 날에도 상록실 책상에 앉아 성향이 다른 두 신문을 번갈아 펼쳐 보며 사설을 읽었다.
그럴 때마다 내 등 뒤에서는 꺄르르 웃는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지와,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 무리였다.
상록실에 겨우 붙어 있던 내가 그들이 만든 상록실의 카르텔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 것처럼, 그들은 나를 노골적으로 밀어냈다.
석식을 먹고 상록실로 들어선 어느 날, 민지와 그 무리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어쩌다 한 번 1등 한 걸 가지고 유식한 척 신문을 읽는 게 꼴사납다는 말이었다. 그 꼴사나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가 들어도 나였다.
그날 이후 민지는 더 이상 내가 하는 일들에 자신의 의견을 얹지 않았다.
대신 내 등 뒤에서, 자신의 자리를 어쩌다 꿰찬 내가 다시 밀려나길 바라는 의식만을 반복했다.
말 대신 시선으로, 평가 대신 침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