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목지 Oct 25. 2024

09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기에

과거에 살면 불행하고 미래에 살면 불안하대요

  우리나라는 소원을 빌 상황이 아주 많다.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초를 불 때도, 산 꼭대기에 쌓인 돌무더기 위에 나도 돌을 하나 얹을 때도, 보름달이 뜰 때도, 유성우가 아닌 그냥 별이 보일 때도 자동반사적으로 소원빌어! 라는 말을 외치곤 한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실제로 또래보다 생각의 지평이 넓은 편이긴 하지만 동시에 극현실주의자인 나는 그런 소원을 비는 순간마다 딱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들이 없었다. 어릴 때는 조금 관심을 받고 싶으니 어른들이 기특하게 생각할 통일이나 세계평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저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적당한 걸 골랐던 것이라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는 좋은 대학에 가게 해주세요, 돈을 많이 벌게  해주세요, 정도에서 그쳤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원을 빌 때 주변사람의 건강이나 나의 건강을 빌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른들이 대단한 소망인 듯 건강을 외칠 때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와닿지 않았다. 어렸던 내 몸은 건강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어리거나 젊었으니 건강을 잃는 다는 것을 구체적인 눈 앞의 위협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며 건강이 조금씩 상하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고 주변 어른들도 더 이상 젊지 않았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젊은 어른이었던 사람들도 점점 늙어갔다. 모두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이가 나보다 6살이 많던 동기들이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가사가 너무 절절하다고 말했던 장면이 생각난다. 한국나이로는 이미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나도 서른즈음이니 그 가삿말이 공감이 된다고 말했지만 모두가 웃으며 아직 넌 모른다고 했었다. 그 때도 어렴풋하게 느끼긴 했지만 이제서야 그들이머물러있던 청춘을 점점 더 멀리 보내며 느끼던 그 감정을 정확히 알 것 같다.


  5년 후에는, 10년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24시간 내내 머리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내가 더 이상 먼 미래를 그리지 않게 됐다. 코로나를 겪고, 소중한 사람이 많이 아픈 상황을 마주하며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느낀다. 그렇기에 현재에 집중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고, 행복한 기억을 나누고 싶다. 훗날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아깝게 쓴 시간이었다고 후회할 순간들을 최소화하는 것이내 30대의 장기 목표가 되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과거에 머무르며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그리며 미리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