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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Mar 23. 2016

보아 구렁이

평범하지 않은것과 평범한것

내가 여섯 살 때 한 번은 <체험한 이야기>라고 하는, 처녀림에 대한 책에서 훌륭한 그림을 하나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보아구렁이가 맹수를 집어삼키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이것을 옮겨 그리면 다음과 같다.
그 책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었다.
"보아구렁이는 먹이를 씹도 않고 통째로 집어삼킨다.
그러고 나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먹이가 소화되는 여섯달동안 잠을 잔다."
그래서 나는 밀림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러 가지로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난 다음 색연필을 가지고
나름대로 내 생애 첫번째 그림을 그려 보았다. 나의 첫번째 그림, 그것은 이러했다.
나는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면서 내 그림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어른들은 "모자가 왜 무섭겠느냐?'고 대답했다.
내 그림은 모자가 아니고, 보아구렁이가 코끼릴 삭이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구렁이의 속을 그려서 보여 주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 두 번째 그림은 다음과 같다.
어른들은 내게 속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하는 보아구렁이 그림은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문법에 취미를 붙이는 것이 좋을 거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여섯 살 때 훌륭한 화가로서의 장래를 포기해 버렸다.  나는 첫번째 그림과 두 번째 그림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해서 낙심했었다.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 언제나 그분들에게 설명을 해준다는 것은 어린이로서는 힘이 드는 노릇이다.
이리하여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비행기 조종법을 배웠다. 나는 전세계를 닥치는 대로 날아다녔다. 지리가 내게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한 번만 보면 중국과 애리조나를 구별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밤에 길을 잘못 들었을 때에 매우 유익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많은 성실한 사람들과 많은 접촉을 가지게 되었다. 오랜 세월을 어른들 틈에서 살며 아주 가까이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좀 명석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늘 간직하고 있던 내 첫번째 그림으로 시험해 보았다.
그가 정말로 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인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모자로군." 하는 것이었다. 그런 때에는 보아구렁이니 처녀림이나 별이니 하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그분이 알아들을 수 있게 브리지니 골프니 정치니 넥타이니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면 그 어른은 매우 똑똑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을 몹시 기뻐했다.



평범하지 않은것과 평범한 것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보아구렁이를 보면서 그동안 나의 평범한 모습에 다시 한번 씁슬한 마음을 못내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팩트 위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통해 보아구렁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것 같아 기쁘다.

허나 평범한 삶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고 조금씩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나는 사람들과 동 떨어져 살아가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것 같다.

점차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나가게 되면서.

길가에 흩어져 마른잎사귀를 걷어내고

피어나는 작은풀 조차도

쉽게 보이지가 않는다.

그 풀은 초록빛을 내는 작은 생명의 귀한 꽃으로

바뀌어 내게 다가온다.

봄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나뭇가지들도.

팔락이는 길거리 배너들도.

봄바람이 내게 속삭이듯 이야기하는것만 같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지는 말아달라고.

나부끼는 계절의 숨결을 느껴달라고.

귓가에 울려퍼지는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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