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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oblanc Dec 28. 2022

사무직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

1. 살벌한 그들만의 리그

몸이 좀이 쑤신다.
너무 하기 싫다
앉아 있는 게 너무 곤욕스럽다.


여기 오고 나서 3달째쯤이었다.

매월 말과 초에 마감을 칠 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었다.


미쳐버리겠다.


13년 전에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직도 네이버에 블로그 일기 하나가 남아 있었다.

2009년 그 당시 수준의 혼자 쓰는 일기였다. 블로그에 이 일기 딱 하나이다.

그건 바로 공장 근무였다 


때는 바야흐로 2009년 25살이었다.

난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일본 유학을 가겠다는 신념으로 아웃소싱을 통하여 공장에 덜컥 입사했다. 이력서는 고졸만 받기에 대졸 학력란은 숨기고 입사했다. 그곳에는 나이 든 어머니들부터 조선족과 타지에서 올라오신 여자들이 많았다. 한국인조차 꺼린다는 방진복을 입고 매일 수백 장의 핸드폰 액정 glass를 닦는 일이었다. 절대 먼지와 흠집이 있으면 안 되었다. 알코올 솜으로 수 천 번씩 문질렀던 것 같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조장 언니의 허락을 받고 가는 일이었다.

처음 느껴본 압박감이었다. 화장실조차 허락이 필요한 곳이구나!

처음 마음가짐은 할 만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틀 삼일.. 점점 내 몸에 맞지 않는 곳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몸에 좀이 쑤신다.
너무 하기 싫다
앉아 있는 게 너무 곤욕스럽다

난 2주 만에 그만두었다. 친구를 남겨둔 채로. 그렇게 친구는 한 달을 채우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불현듯이 그때 생각이 났다. 누구나 아는 굴지에 대기업인데  13년 전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일들.

정말 성가 쉬고 귀찮은 일들.

그런 일들을 할 때마다 모두들 나를 그렇게 바로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해도 티 안 나고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 그런 일들.

그렇게 난 자존감이 바닥이 되고 있었고 난 그들의 업무를 수월하게 해주는 사무 지원일 뿐이었다.


처음 입사하자마자 K팀장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S 씨 입사하고 나서 한몇 달간은 힘들 거예요.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해?라는 일도 해야 할 겁니다.

사무직은 사무지원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러려면 다시 입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1년 후에 정규직이 될 거라는 보장은 못해주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봅시다."

저렇게 이야기한 팀장과 난 트러블이 가장 많았고 3달 뒤 퇴사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는 워낙 타 부서와 사사건건 트러블이 많았고, 본사에도 보고가 되어 다른 곳으로 '나가리'가 되었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본사로 가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별로였고 얻을 것도 없던 팀장이었는데 그가 다시 본사로 가게 되다니 아이러니하다. 그가 한 업적들만 보자면 그는 저기 밑 지방으로 귀향을 가야 할 법한데 말이다. 그는 공채 출신이었고 줄을 잘 탔다는 소문이 있었다. 업무 또한 수치화시키는 것이 뛰어났다고 한다. 사람들 평이 좋지 않은 '인성 파괴자'였던 그지만 회사입장에서는 그는 일 잘하는 팀장일 뿐이었다.

단지 매출이 나오지 않는 한 계열사의 팀장이지만, 윗사람 말 잘 듣고 궂은일까지 도맡아 하는 착실한 배운 노예였다. (항상 팀원들끼리 야근할 때마다 박사노예/석사노예/학사노예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타 부서를 제외, 우리 부서원들 사이에서는 나 빼고는 다들 그를 좋게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나만 이방인이었다.

'내가 이상한 걸까?'라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

왜냐고? 여기선 팀장에게 잘 보여야 승진하거든.

팀장 인성 개차반이어도 팀장눈에 잘 보여야 하거든.

물론 일은 기본 베이스이다. 일은 당연히 잘해야 한다. 열심히만 하면 안 된다.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시간관리 알아서 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는 볼 수 없던 휴식공간이 따로 있고 의자 또한 안락하다. 카페테리아에는 항상 음료수가 있고, 간식이 즐비하여 있다.


회사 복지 알아서 챙겨줄게,
너네는 일만 잘해 열심히만 하지 말고 결과치로 보여줘



근데 K팀장은 결과치도 없는데 본사로 가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심도 항상 부서원들끼리 먹어야 하고 따로 먹으면 섭섭해한다던 그 팀장은 본사 가서 동기들과 자유롭게 먹는다고 한다. 부하직원도 더 늘어났고 본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영이 아닌 회계일을 하면서 말이다.

그 밑에 직원들 몇 명은 죽을 맛이라는 소문과 함께...


그 뒤 새로 유능한 팀장님이 오니 좀 더 버티라는 대표이사의 말을 듣고 난 3개월을 더 버틴 뒤,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 6개월이 정말 6년 같았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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