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떨림을 처음 배운 어느 흐린 날의 기억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중학교 2학년 국어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시절 선생님 별명은 ‘노처녀’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서른을 갓 넘겼을 나이였을 텐데, 그땐 ‘골드미스’ 같은 고운 말조차 없던 때였다.
우리는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
선생님은 문학작품을 사랑했고, 작품을 설명할 때마다 눈빛이 반짝였다.
난 그 눈빛이 참 멋있었다.
가끔 우리에게 시를 읊어주곤 하셨는데 그 목소리가 참 쫀득하게 감겼다.
시를 좋아하지 않던 나조차 ‘시집을 한 번 읽어볼까?’ 싶을 만큼.
그런데 어느 날.
교실 뒤쪽에서 아이들이 낙서를 주고받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노트를 뺏어 들고 첫 줄을 읽었다.
‘노처녀 주제에….’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교실의 공기는 단번에 얼어붙었다.
선생님은 노트를 내려다보다 조용히 멈춰 섰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습을 시킨 뒤 한참 동안 창밖만 바라보고 계셨다.
뒤돌아보니, 선생님의 입술이 아주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뒤로 수업은 달라졌다.
반짝이던 눈빛도, 생기 있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어린 나였지만, 축 처진 어른의 어깨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속상한 마음에 작은 메모를 적어 수업 후 선생님께 드렸다.
우리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것,
그 아이들도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 그대로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주 조금, 눈가가 젖어 있었다.
얼마 후 선생님은 다시 예전처럼 수업을 하셨다.
다시 시를 읽어주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오늘 흐린 하늘을 보는데
그때, 창밖을 바라보던 선생님의 옆모습이 문득 떠오른거다.
텅 빈 눈빛과 조금 떨리던 입술.
그날 처음 알았다.
“어른도 이렇게 상처받고 흔들릴 수 있구나.”
세월이 흘러 나도 어른이 되고 나니, 그 장면이 더 깊이 이해된다.
몇 해 전, 삶이 유독 버거웠던 시기가 있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 병원 모시고 다니기,
고만고만한 세 아이 육아,
발령으로 길어진 출퇴근길,
책임만 늘어나는 직장.
게다가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코로나까지 터졌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했던 그날, 퇴근길 라디오에서 내 마음과 닮은 사연이 흘러나왔다.
사연을 듣고 게스트가 말했다.
“원래 40대가 참 힘든 시기입니다.”
부모님 건강, 아이들, 직장, 내 몸의 변화, 예상치 못한 사건들까지.
모든 것이 한 번에 밀려오는 나이란다.
그 한 문장이 그렇게 위로가 될 줄 몰랐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 탓도, 내 불운도 아니고… 원래 이런 거구나.’
그 순간 이상할 만큼 가슴이 환하게 뚫렸다.
어른이 된다는 건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 일이고,
스스로를 붙들고 다시 걸어 나오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버거운 순간이 오면 이렇게 중얼거린다.
“괜찮아. 지금은 원.래. 힘든 시기야.
그리고 이 길의 끝은 분명히 있어.”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럴땐 내가 단순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라서 버티는 게 아니라,
버티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다.